• Joon Choi, Jazz Musician

가을에 듣는 영화 음악 한 곡, Two for the Road by Henry Mancini

가을이 시작되는 9월이다. 음악이란 언제 들어도 좋은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계절마다 좀 더 잘 어울리는 음악이 있고 날씨나 분위기 때문에 음악이 더욱더 맛깔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번 달에는 9월에 썩 잘 어울릴만한 영화음악 한 곡을 소개한다. 1967년 스탠리 도넨(Stanley Donen)감독이 만든 영국 영화 ‘Two for The Road(언제나 둘이서)’라는 영화인데, 당대의 아이콘이었던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과 영국 국민 배우 알버트 핀니(Albert Finney)가 부부로 등장해 프랑스를 여행하며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담은 아름다운 로드 무비다. 이 영화 전반에 흐르는 아름다운 음악은 세계적인 영화 음악가이자 필자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헨리 맨시니의 작품으로, 신선한 초가을 바람처럼 가벼운 스피드가 느껴지는 기분 좋은 음악이다.

필자도 영화음악 의뢰를 받고 촬영장에서 함께 작업하며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어서 영화음악이라는 장르의 특수성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일테면, 적어도 영화 전반에 흐르는 스토리의 맥을 아우를 수 있는 테마 음악을 잘 만들어야 하고, 또 음악이 들어가야 할 각 씬 마다의 특징을 음악 안에 최대한 집약해서 녹여내야 하는 감각적인 재능이 필요하다. 그뿐만 아니라,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적절한 악기 선정 역시 깊이 고민해야 할 요소 중 하나다. 헨리 맨시니의 Two for The Road의 영화음악은 음악 자체로도 충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라는 인물이 가진 탁월한 재능을 언급하지 않고는 충분히 설명할 수가 없다. 헐리우드와 유럽을 넘나들며 영화 역사를 통틀어 영화음악을 가장 많이 만든 뮤지션 중 하나로 꼽히는 헨리 맨시니는 단순히 다작의 수준을 뛰어넘어 각각의 영화가 그의 음악으로 인해 어떻게 예술적인 극대화를 만들어 내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곡가라고 할 수 있다. 우선 먼저 Two for the Road를 들어보는 것이 좋겠다.

내가 헨리 맨시니의 영화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우연히 그의 영화음악 앨범 ‘In the Pink’를 듣게 되었는데, 그 앨범 안에는 주옥 같은 음악들이 들어 있었다. 우선 앨범의 대표곡인 ‘핑크 팬다(The Pink panther)’를 비롯해 오드리 헵번의 데뷔작, ‘티파니에서의 아침을(Moon River)’, 그리고 스토리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영화, ‘가시나무 새(The Thorn Birds)’의 주제곡, 또 작곡가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음악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아기 코끼리의 걸음마(Baby Elephant Walk)’ 등 지금도 최고로 꼽히는 전설 같은 명곡들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유명한 플루트 주자, James Galway와 함께 작업했다는 점이 맘에 들었는데, 앨범의 수록곡을 한 곡씩 들을 때마다 “아니, 이것도 맨시니 작품이었어?”라며 크게 놀랄 정도였다. 이번에 소개하는 ‘Two for the Road’ 역시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인데, 워낙 인기 높은 곡들이 많았던 탓인지 이 곡은 상대적으로 크게 명성을 얻지는 못한 것 같아 내심 아쉬운 작품이기도 하다.

Courtesy of beatedelic

헨리 맨시니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풀룻 연주자로 활동했던 이태리계 아버지의 혈통을 이어 받은 탓인지 그의 음악에는 이탈리아 팝과 재즈가 접목되어 있으면서도 미국의 컨템포러리까지 적절히 녹아있다. 또한 색채감이나 Scenery가 연상되는 어떤 시각적인 효과를 느끼게 하는 강렬한 힘이 있다. 한마디로 영화라는 장르에 가장 적합한, 낭만적이면서도 현대적 세련미를 결코 잃지 않는다. 얼마 전에 타계한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가 클래식 적 요소가 많은 장엄한 스타일의 음악을 주로 만들었다고 한다면, 맨시니의 음악은 재즈다. 내가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특정 장르나 분위기에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장르에 국한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영화의 스토리가 해피 엔딩이든 비극이든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곡마다 한 번 들으면 결코 잊혀지지 않는 쉽고 매력적인 멜로디가 있다는 것과 그에 반해 멜로디 아래에 숨어 있는 음악의 전체적인 화성 진행은 전문가가 아니면 분석이 어려울 정도로 고급스럽고 정교하다. 멜로디는 귀에 쏙 박힐 정도로 대중적 매력적이 있는 반면, 음악적 지식이 있는 전문가들도 동시에 즐길 수 있도록 깊이 있는 화성으로 음악의 흐름을 충실히 완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Courtesy of discogs

Tow for The road의 테마 뮤직은 맑고 경쾌한 분위기의 도입부를 지나면 다소 중후한 음색의 바이올린 멜로디가 나온다. 오케스트라의 매끈한 사운드 위로 가볍지 않은 톤의 바이올린 선율이 곡 전체를 더욱 입체적으로 채운다. 맨시니의 자서전에 의하면 프렌치 재즈 바이올리니스트 Stéphane Grappelli의 연주라고 한다. 로드 무비에 어울리는 가벼운 스피드가 느껴지는 이 곡은 한적한 시골길로 자동차 여행을 할 때 감상하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아름다운 곡이다.

오드리 헵번의 대다수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되었던 것과는 달리 Two for The Road는 한국에서 상영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아마도 영화가 강렬한 주제나 드라마틱한 전개가 없고 그저 일반적인 부부 사이에서 벌어질 수 있는 소소한 갈등과 회복을 다룬 평이한 스토리다 보니 굳이 수입해서 개봉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전체적으로 밋밋할 수도 있는 스토리 속에는 스탠리 도넨 감독의 재치와 휴머가 곳곳에 숨어 있고, 거기다 감각적인 편집술, 그리고 두 남녀 주인공의 원숙한 연기가 잘 버무려진 비교적 높은 평점을 받은 영화라는 점이다.

Scene of Two for the road

최근 필자는 휴가차 사우스 캐롤라이나로 내려가는 길에 웨스트 버지니아의 Blue Ridge Mountain으로 우회하면서 Two for the Road를 들었다. 프랑스의 낭만적인 길과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마주하며 나름 그 음악이 주는 맛을 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어 무척 기분이 좋았다. 음악을 들으며 동행한 아내와 맨시니의 음악에 대해 긴 대화를 나누었던 기억이 남아 있다. 날씨가 선선해지고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9월에는 주말 하루쯤 야외로 차를 달리며 Two for The Road를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글, Joon Choi, Jazz Music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