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Essay By Clint Jung

11월이 왔다. 달력에는 워커홀릭처럼 일했던 한 해의 끝자락에 닿기 전에 잠시 쉬어가라며 공휴일이 찍혀 있다. 오랫동안 책상 앞에 구부려왔던 허리를 펴라고. 한동안 보지 못했던 가족들과 마주하라고. 올해를 돌아보며 감사함을 갖으라는 추수감사절 Thanksgiving의 달이 왔다. 티브이에선 하이퍼 인플레이션이라며 작년에 비해 칠면조 고기 가격이 두 배가량 인상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고. 미국 가계의 소비심리가 악화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고물가, 고유가, 고금리… 모든 것이 흑색선전인 것으로 치부한 채 단절된 채 살고 싶고. 이번 추수감사절엔 터키 샌드위치로 구색이나 맞출까 싶은. 11월이 성큼 다가왔다.

우리 가족은 칠면조 고기를 잘 먹지 않는다. 평소엔 무관심하다가 추수감사절이 되어야만 으레 찾게 되는 것이 칠면조 구이다. 오븐을 가득 채워버리는 규격 외의 크기. 네다섯 시간은 족히 구워야만 겨우 먹을 수 있는 슬로 푸드의 대명사. 3인 가족이 먹기엔 턱없이 크고 많은 양 때문에 우리 가족 하나로는 감당하기 버겁다. 가까운 마트나 보스턴 마켓에서 미리 구워낸 것을 사면 모를까, 칠면조 구이는 쉽게 일을 벌이기엔 힘든 요리이다. 초대할 지인들이 많다거나 대가족이었다면 다른 이야기겠지만.


한세대만 올라가도 너나 할 것 없이 대가족이었던 때가 있었다. 우리 가계를 예를 들어도 친가와 외가 모두 대가족인데다가 친척 간의 잦은 왕래가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와서도, 외가 쪽이 대부분 이민을 온 상황이어서 대가족 체제의 모임은 유지되었다. 외조부모에, 이모가 세분, 삼촌이 둘인데다가 이모부와 외숙모들에 외사촌들. 거기에 외사촌들이 결혼하기 시작하니,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머릿수로 이름조차 기억하기도 힘들어졌다. 사는 것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결혼식과 장례식을 제외하고 전부 모인 적이 드물기도 했다. 그래도 추수감사절이나 새해 같은 명절 때엔 과반수는 모였고, 칠면조 구이나 떡국을 나누며 정담을 나누었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 날 없다고 이런저런 마찰을 겪기도 했다. 한번은 서운한 것이 있었던 외삼촌이, ‘아버지랑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우리가 모일 것 같아?!’라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던 때가 있었다. 몇 년 뒤 외조부모님들이 돌아가시자, 그 뒤로는 연례행사였던 친척들 간의 모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일말의 미련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고 나서 정말 칠면조를 대접할 일도, 구경하러 갈 일도 없어졌다.


현시대의 변화 속도는 따라가기 버겁다. 가족의 형태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모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고 세대 간의 정이 줄어들고 있다며 논평을 듣던 사회 과목 수업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샌가 1인 가구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풍요롭던 베이비붐 세대의 호시절은 끝나고 인구절벽 시대에 도래했고, 찬란했었던 X세대는 MZ세대에 의해 아재 세대로 밀려났다. 스마트 폰의 발전으로 소셜 미디어와 메타버스를 통한 만남이 이루어지고, 일촌은 구독과 좋아요, 알림 설정으로 진화되어 쉽게 더 많은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넘쳐나는 인간관계와 연락처를 갖고 있음에도, 저녁 식탁에 올릴 칠면조 한 마리가 크다고 고민하게 만드는 아이러니한 시대에 살고 있다.

11월이 왔다. 아메리칸 인디언 중 하나였던 아라파호 족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불렀다. 많은 것들이 변하고 소멸하고 있지만, 칠면조 구이에 그레이비소스와 으깬 감자, 옥수수를 곁들인 풍성한 저녁은 우리를 언제나처럼 행복하게 만들어 줄 것 같다. 며칠째 남긴 음식 처리에 골머리를 앓겠지만. 서브웨이의 터키 샌드위치 생각은 접었다. 반가운 사람들의 얼굴. 온기, 신뢰, 친밀함 그리고 삶의 이야기가 채워질 추수감사절의 만찬이 기다려진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