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봄맞이 대청소를 하다가... Essay by Clint Jung

거주하고 있는 건물이 오래돼서 그런지 사소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진다. 벽에 금이 가고, 페인트가 벗겨지고, 곰팡이가 생기기도 한다. 부엌 캐비닛도 교체 주기를 훨씬 넘겨 적잖이 낡았다. 사람을 불러 플라스터를 새로 하고 페인트칠과 캐비닛을 바꿀 일정을 잡았다. 이제 4월, 이래저래 수리 일정이 잡히니 본격적인 봄맞이 대청소가 시작되었다.

오래된 물품들을 버리고, 아이가 더 이상 놀지 않는 장난감들을 정리했다. 쓰지 않는 운동 기구들을 버리고 낡은 화분들을 버렸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옷과 신발을 담은 봉지들이 동네 헌 옷 수거함으로 이전되었다. 어디서 산 것인지 받은 것인지 기억도 나지 않은 액세서리들이 버려졌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사용하다가 바꾸게 된 휴대전화기들, 이제는 기억도 가물거리는 폴더 폰들이, 노키아, 모토로라, 블랙베리 등이 발견되었다. 이것들을 버리면 개인 신상이 털릴까 걱정이 들기도 했지만 스마트 폰 이전의 휴대전화기에 담긴 것이라곤 사진 몇 장이나 전화번호와 이름들뿐. 그 전화번호들도 지금껏 살아있는 것들이 몇 개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한 20년 가까이 휴대전화기 번호를 바꾸지 않고 있다. 나보다 더한 아버님은 30여 년째 집 전화번호를 유지하고 계신다. 코네티컷에 사는 한 지인은 언젠가 올지 모르는 연락 때문에 이민 온 후 지금껏 같은 전화번호만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의외로 그런 비슷한 이유를 간직한 사람들이 꽤 있다. SNS로도 찾지 못하는 인연들이 죽기 전까지 잊지 않고 연락해 주기를 바라는 소망들을 품고 있다. 우리는 모두 외로운 사람들이니까. 어쨌거나 추억의 잔해 같은 휴대전화기들은 모두 리사이클 센터에 넘겼다.

그리고 낡은 일기장들과 다이어리들을 찾아내었다. 몇 권 안 되는 지금껏 버리지 못한 기록들. 유년 시절부터 난 일기 쓰는 것을 좋아했다. 초등학교 때는 숙제 때문에 강제된 행동이었지만 그 이후로는 시를 적거나 추억을 기록해 두려는 보조장치의 역할이 컸다. 하지만 혼자 읽으며 기꺼워하던 기록들이 주위의 누군가, 부모님이나 형제에게 읽혔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는 바로 손을 놓았다. 지금까지도 일기는 쓰지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정리되지 않거나 완성되지 않은 글들이 다른 이에게 읽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 습관이 남아 여전히 노트나 다이어리 등을 구매하는 것을 즐겨하긴 하지만 잘 써지지는 않는다. 컴퓨터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에 주로 글을 쓰고 패스워드를 입력해서 보호하기도 했는데, 패스워드를 잊어먹어 날린 글들도 꽤 되었다. 결국 웹사이트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PC통신이나 프리챌, 싸이월드도 한참을 이용했는데, 서비스 제공 회사들이 문을 닫으면서 사진 및 데이터들이 역시 공중분해 되었다. 그래서 새로 시작했던 것이 개인 블로그였다. 이것은 보관상 별문제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한 참 몇 년을 쓰다가 사는 게 바쁘다고 잠시 미뤄 두었는데 오랜만에 로그인하려고 하니 들어가지 않았다. 고객센터에 문의해보니 5년 이상 접속하지 않아서 계정과 데이터가 모두 삭제된 상태로 복구는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몇 년간 써놓아 두었던 수필과 시들이, 조회 수가 한순간에 사라진 것을 보니,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업조차 하지 않았던 게으름에 대한 답이기도 했고. 또 어떻게 보면, 아날로그의 장점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또 다르게 보면, 옛것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 시작하라는 시그널 같기도 했다.

이런저런 사건·사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글 쓰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로 매년 새 학기 문구류 세일 광고가 우편함에 꽂히면 새 노트를 사러 간다. 청소할 때 보면 집 구석구석 쓰지 않은 노트들과 저널들이 숨겨져 있고. 에버노트나 한컴, 워드로 글을 저장하고 새로 만든 블로그에 습작을 올려놓고 있음에도. 언제든 아날로그 방식으로 돌아갈 만반의 준비를 한다는 핑계로 노트들을 준비하고 있다. 이럴 때 보면, 내 취미가 글을 쓰는 것인지 문구류를 구매하는 것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그래도 대외적으로, 내 취미는 글 쓰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구매한 노트들에 글을 가득 채울 것이라는, 희망 사항을 갖고 있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