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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INT JUNG, 북 칼럼니스트

사막별 여행자-Moussa Ag Assarid 저

프랑스에는 많은 정신병원이 있다. 그보다 더 많은 사람이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저마다 안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는다. 가족과 친구들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조언을 구하지 못한다. 투아레그인들에게 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는 데 돈을 지불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의 병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이름 모를 사람을 찾아가 돈을 지불하게 만드는 그토록 강렬한 고통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 엄청난 불안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168p

Photo credit Clint Jung

요즘처럼 영상매체나 인터넷이 없었던 80년대엔 책 광고가 라디오를 통해 곧잘 소개되곤 했던 것을 기억한다. 당시엔 성공철학 또는 명상철학서가 인기몰이를 하던 시절이라 <꽃들에게 희망을>, <빵장수 야곱>, <성자가 된 청소부>, <예언자> 등 지금도 회자되는 스테디셀러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인도의 성자들, 아메리칸 인디언들, 그리고 중동지역의 잠언들이 꽃피웠고, 한국과 중국의 옛 현자들과 유럽의 지성들도 등장했었다. 그 뒤로도 몇 년마다 주기적으로 이런 처세술에 관한 책들이 유행을 타곤 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기존 책들과 대동소이할 뿐만 아니라, 특이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내용을 가지고 남녀노소 불문하고 저마다 전문가에, 명성과 덕망 높은 성자나 철학자가 돼서 가르치려 드는 것이 오히려 피로감을 주었다. 작가가 책에다 쏟아놓은 사고나 철학의 깊이가 점점 얕아지는 것인지 내 마음이 점점 메말라 가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을 만큼 책의 내용이 아니라 출판물의 양에 함몰될 지경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이런 책들에 대한 관심을 접고 살았는데, 우연히 읽게 된 여행 에세이 <사막별 여행자>가 들려주는 사막 이야기는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신선하고 뭔가 달랐다. 90년대 유행했던 류시화의 여행 에세이와 무엇이 다른가 묻는다면 ‘명상 스승이나 구루를 만날 수 없는 사하라 사막 이야기’라고 콕집어 말할 수 있겠다.


By Clint Jung, Book Columnist


‘나는 사막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라는 머리말로 시작되는 이 책은 복잡한 문명사회와 단순한 유목민 사회를 비교하며 사하라사막의유목민족인 투아레그족의 무사 앗사리드의 여행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사막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책,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가 있는데 그 책이 저자가 문명사회와 만나는 매개체가 된다. 사막에 취재하러 온 한 프랑스 여기자의 가방에서 떨어진 <어린 왕자>를 한 유목민 소년이 집어주는데, 여기자는 소년에게 선물로 그 책을 주고 떠난다. 소년, 무사 앗사리드는 책을 읽고 싶어 30km 거리의 학교를 걸어 다니면서 이미 오래전 사망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생떽쥐베리를 만나려고 사하라 사막을 떠나기로 마음먹게 된다. 스무 살 무렵 파리에 도착한 무사 앗사리드는 문명 세계에서 쉽게 보는 풍요로움에 충격을 받게 되고, 그 풍요로움 속에서도 그들이 놓치고 사는 ‘이 순간의 행복’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주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어린 왕자>를 끌어들이는 도입부는 작위적인 각색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사실로 믿고 싶어진다. 마치 사막에서 성장한 어린 왕자가 문명 세계로 찾아오는 과정을 쓴 것과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하는 이 이야기는 물질주의와 연결고리가 보이지 않는 무사 앗사리드의 순수성이 어린 왕자의 시각과 닮았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깨나 날리는 유명 배우가 외로움이 힘들다는 이유로 개들과 어울려 지냈다는 기사를 읽으며 나는 당황스러웠다. 수천의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보거늘! 어째서 그런 잡지들이 인기가 좋은지 궁금해하자 친구들이 설명해 주었다. 사람들은 그 스타들을 통해 꿈을 꾸는 거라고.

내가 보기에 그들은 꿈꾸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았다. -43p


유목민 출신의 저자가 구전되어 내려오던 부족의 지혜를 곁들여 사막 이야기를 펼쳐놓으니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진솔하게 느껴진다. 사막에서 태어난 탓에 자신의 생년월일조차 모르는대학생의 입담이 저명 작가들의 글보다 명철하게 느껴지다니! 내게는 특히 풍요로움에 관한 화두가 무엇보다 깊이 다가왔는데, 풍요와 만족, 풍요와 감사, 풍요와 행복 사이의 상관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예전엔 사막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호연지기를 키우기에는 거친 산맥과 광대한 바다면 충분했으니까. 지구 반바퀴를 돌아야 다다를 수 있는 사하라. 모래바다로 이루어진 망망대해 속에서 그 어떤 만족과 감사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 그곳에서도 삶은 축복 속에 잉태되고, 어떤 민족들은 여전히 자연에 순종하고 신께 감사하며 하루를 소중하게 살아간다.


첫 만남. 나는 바다를 홀로 마주하고 싶었다. 평생 물을 찾아다닌 사막의 소년에게, 그 광막한 물과 마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다. 하늘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바다가, 나의 사막처럼 바다는 수평선보다 더 멀리 펼쳐져 있었다. 감격한 나는 바다에 다가가 바닷물을 마시려고 몸을 굽혔다. 짠물이었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토록 많은 물이 갈증을 풀어줄 수 없다는 사실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바다에서조차 목마름으로 죽을 수 있다니. 그러니까 바다 또한 사막이었던 것이다. -228p


평생 도시의 울타리 안에서 살았다. 풍요롭다 믿었던 도시는 모르는 사이 감정과 관계의 사막화가 진행되었다. 개개인으로 쪼개어진 채로 사막 민족보다 더 외로워졌고 소중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잊어버렸다. 문득 여행이 하고 싶어졌다. 지난 일 년간 집이란 공간 안에 꼭꼭 숨어있었으니, 별과 마주하고 바람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자연과 삶을 대하는 법을, 외롭지 않게 되는 법을 다시 배워가고 싶다.

현대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점은 지금 이 순간의 시간을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시간을 호주머니 안에 넣고 다니면서 재고로 남아 있는 시간을 파악하여 새로운 계획을 세우거나 늘 시간에 쫓기며 살아간다. 그러면서 ‘시간은 금’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늘 한 시간 후와 내일을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래를 살고 있는 게 아닐 뿐더러 더구나 미래는 현재에서 탄생한다.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살아야 내일도 있다. 그런데 조급하게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향해 뛰어다닐 필요가 무엇이 있겠는가? – 129p


문명세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시간을 잃어버린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 투아레그인들은 다른다. 우리에게 시간은 잃거나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는’ 것이다. -11p


어디로 가야할 지 더 이상 알 수 없다면, 자신이 어디서 왔는가를 기억해 내야 한다. 자신이 온 곳이 어디인가를 잊지 않는다면 길을 잃을 까닭이 없다. 어디로 갈지, 무엇을 먹을 지, 무엇을 살지 우리는 매 순간 결정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한 선택들이 자신의 삶을 이룬다. -90p


<사막별 여행자> 무사 앗사리드 Moussa Ag Assarid

원제 : Y a pas d'embouteillage dans le desert


프랑스에서 투아레그족의 전래 민담을 소개하는 이야기 교사이자 라디오 프랑스 앵테르나시오날과 프랑스 퀼튀르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활발한 강연을 통해 사막 유목민 문화를 알리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사막학교 후원 단체와 사랑의 카라반 활동을 이끌고 있으며 현재 앙제의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양성학교 IRCOM에서 인간사회 행동발달관리 분야 학위 취득 과정을 밟고 있다. 〈사막별 여행자〉, 동생 이브라힘 앗사리드와 함께 <사막학교 아이들>을 펴냈다.


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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