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on Choi, Jazz Musician
여행길 음악 한 곡, Getz/Gilberto “The Girl from Ipanema”
요즘은 ‘클릭 전쟁 시대’라고 할 만큼 콘텐츠가 넘쳐난다. 단순한 지식 거리를 넘어 음악 분야도 다르지 않다. 더 놀라운 것은 예전처럼 곡 하나를 찾아 듣기 위해 앨범 전체를 뒤질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손에 있는 전화기에서 몇 글자만 찍어도 내가 원하는 곡이 바로 내 앞에 나온다. 필자가 음악 활동을 했던 80년대에는 CD라는 것도 없었을뿐더러 원하는 곡이나 앨범을 찾기 위해서는 종로에 있는 세운상가 레코드 가게를 돌아다니며 소위 ‘빽판’이라 불리는 짝퉁 음반 100장 정도는 사와야 겨우 한 곡을 제대로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사 온 100장의 빽판 중 90장 정도는 그냥 버리기 다반사였다. 왜냐하면 원래 빽판이라는 게 외국에서 들여온 음반을 마구 복제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잡음이 너무 많아서 거의 턴테이블을 망가뜨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표지와 내용이 다르거나, 심지어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음반들도 허다했다. 음악을 하던 사람으로서 라이센스 LP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지만, 당시는 군사정권 시대라 수차례의 검열을 거쳐 나온 소수의 음반만이 겨우 유통되었을 뿐, 빽판이나마 외국 음악 한 곡이라도 제대로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8월에 소개할 앨범은 당시의 추억이 묻어 있는 ‘Getz/Gilberto’다. 이 두 사람은 미국에서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비교적 인지도가 높은 뮤지션들이다. 지금은 실용음대학 교수로 재직 중인 당시 우리 팀(이색지대)의 기타리스트가 어느 날 연습실로 이 앨범을 들고왔다. 세계적인 히트곡들이 담겨있기도 했고, 그저 시끄럽고 화려한 음악만 고집했던 우리들의 젊은 객기를 단칼에 잠재울만한 저력과 매력이 느껴졌던 앨범이라 “그래 우리가 앞으로 할 음악은 보사노바야!"라며 입을 모았던 기억이 있다.
Antônio Carlos Jobim은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작곡가, 가수, 피아니스트로 보사 노바(Bossa nova)의 전설을 만들어 낸 위인이다. 조빔을 클래식 쟝르로 옮겨놓고 본다면 적어도 Bach 급은 됨직하다. 장담하건대 어떤 보사노바 음악이 흘러나왔을 때 ‘아, 들어봤어 이곡!’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대개는 조빔의 곡이 맞을 것이다. 그만큼 조빔은 보사노바라는 브라질 음악을 세계의 음악으로 정착시킨 뮤지션이다. 조빔과 함께 작업한 아티스트는 많지만 그중에서도 조앙 질베르토(João Gilberto)와 스탕 케츠(Stan Getz)는 뗄래야 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앨범 이름도 Getz/Gilberto다. 이 앨범 전체에 흐르는 음악은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 있거나, 혹은 한적한 시골 마을을 서성이거나, 또는 파도가 밀려오는 해변, 운무가 짙게 덮인 산꼭대기 등 그 어느 곳과도 너무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다. 필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덧붙이면 이 음악은 8월에 듣기가 가장 좋다. 왜냐하면 장마도 다 지나가고 한가로이 시골 원두막에서 참외나 수박을 먹으며 들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인의 토속적 정취와도 전혀 간극이 없다.

특히 조빔은 보사 노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보컬리스트라고 불리는 조앙 질베르토와 질베르토의 아내이자 훗날 솔로 가수로도 엄청난 성공을 거두게 되는 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와 함께 협연하면서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두 사람이 함께 부른 노래, ‘The Girl from Ipanema’가 Getz/Gilberto 앨범의 1번 트랙을 차지한 것도 이들의 음악이 주는 독특하면서도 대중적인 보사노바 리듬과 편안하면서도 묘한 끌림이 있는 음악적 매력 때문이다. 사실 아스트루드 질베르토는 이 곡을 발표하기 전에는 프로패셔널한 음반을 발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모르긴 해도 장난삼아 불러 본 노래에 그녀만의 순수함과 독특한 매력이 묻어 나와 기대치 않은 공전의 히트를 하지 않았을까 짐작된다. 해마다 여름 휴가 때가 되면 내 캐리어에는 어김없이 이 앨범이 들어있다. 재즈를 전공하고 많은 음악을 듣고 분석하고 공부했지만, 예술에 있어서의 대중적인 힘은 결코 무시할 수도, 무시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이 앨범을 통해 자주 깨닫게 된다. 올여름 휴가길에 Getz/Gilberto의 앨범이나 적어도 1번 곡 ‘The Girl from Ipanema’를 들어보길 추천한다. 장담컨대 여행길이 더 유쾌해질 것이다.
글, 최준성, 재즈 뮤지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