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Nana Huh Editor
소소한 이야기에 쏠쏠한 재미를 더하다. '립스틱 바른 돼지' 출간한 박경철 작가
차분한 목소리, 꾸밈없는 말투, 선한 미소를 가진 박경철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노라면 순수함이 사라진 냉혹한 현대사회에 보기 드물게 맑고 너른 품을 지닌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 가족을 사랑하고 동물을 아끼며, 남을 돕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그는 부드럽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시멜로를 연상시킨다.

코넬대학교(Cornell University)에서 호텔 경영학을 공부하고 컬럼비아대학교(Columbia University) 대학원을 졸업한 후, 현재 회계법인 Ernst & Young에서 일하고 있는 박경철 작가는 그야말로 엘리트의 길을 정석으로 걸어온 인재다.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하며 살 만도 한 데, 그런 욕심보다는 자신의 진정한 열정이 담긴 '글쓰기'를 실천하며 자족하는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제목부터 유쾌한 그의 첫 번째 책 ‘립스틱 바른 돼지’는 현지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영어 관용구를 그가 40년 넘게 살아온 이민 생활 속 소소한 에피소드들과 적절하게 버무려 재미와 유익을 동시에 담아낸 흥미로운 책이다. 그 속에는 돼지를 비롯해 우리 삶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친숙한 동물들이 대거 등장하며, 작가의 어린 시절부터의 작은 일상들이 영어 관용구와 함께 조화롭게 구성되어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장기화로 몸도 마음도 지치고 우울한 요즘, 마음 한자락을 따듯하게 데워준 박경철 작가와의 인터뷰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TOUCH storylab 독자들과 나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본인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부족한 책인데 작가라고 불리니 부끄럽습니다. 저는 ‘립스틱 바른 돼지’를 쓴 박경철이라고 합니다. 7살에 온 가족이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고, 코넬대학교와 컬럼비아 대학원을 나와 현재는 회계법인인 Ernst & Young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과 동물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공부만 열심히 했지 돈 버는 재주는 없고(웃음)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사람보다는 동물과 대화하는 게 더 편하고 즐거운 사람입니다. (웃음)
회계 분야에서 일하고 계시는데, 책을 발표하신 동기가 있으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늘 책을 좋아했고 가까이했어요. 저는 현재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책을 써보라고 권유하셨고 용기도 주셨죠. 마침 지난해가 어머니의 85세 생신이셨어요. 특별한 선물을 드리고 싶어 제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의미가 있는 책을 쓰기로 마음먹고 준비를 했었죠. 어머니께 드릴 생신 선물이 동기였는데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 여러모로 시간이 지연되어 출판이 조금 늦어졌어요.
책 제목이 아주 유머러스한데요, 이런 타이틀을 붙이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책 제목으로 몇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행복한 조개(Happy as a clam), 그리고 립스틱 바른 돼지(Putting lipstick on a pig)였어요. 책 제목이 재밌어야 책에 관심을 둘 것 같아서 ‘립스틱 바른 돼지’로 정했어요. 동물을 좋아하고 동물에 관한 관용어가 많아 그런 제목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영어 관용어에 일상이 담긴 조합이 독창적인데요, 작가님 삶의 이야기도 즐겁지만, 영어 관용어를 배울 수 있는 좋은 소스(source)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는지요?
몇 년 전에 제가 다니는 교회에서 어른들을 위해 토요일 아침마다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요, 대부분의 어르신이 영어를 잘하셨지만, 영어 관용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영어 관용어만 가르치는 클래스를 진행했었죠. 그때 기억을 바탕으로 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또 제가 워낙 동물을 좋아해서 동물에 관한 관용어가 재미있기도 했고, 특별히 이 책은 어머니께 드릴 선물의 목적이 컸으니까 어머니께서 재미있어하시고 좋아하실 삶에 연관된 이야기를 엮어서 구성하게 되었어요.
‘립스틱 바른 돼지’가 소위 ‘인생 첫 책’인데, 출판하기까지의 과정이 어렵지는 않으셨는지요?

글을 쓰는 자체는 전혀 어렵지 않았어요. 관용어들은 미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것들이고, 거기에 제 삶 이야기도 쉽게 적용이 가능했죠. 이 책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은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예전에 영어를 가르쳤을 때 썼던 노트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모든 관용어 중에서 200개 정도를 추렸는데, 자주 쓰지 않는 것은 제외하고 가장 많이 쓰이는 것들 위주로 골랐어요. 글을 쓰는 것보다 오히려 교정, 편집, 인쇄, 그 외 부수적인 일들을 진행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7살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제가 사용하는 한국어에는 어린아이 식 말투가 여전히 남아 있고, 또 저희 어머니 고향이 이북이기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배운 어휘나 어투가 글에 묻어 있었거든요. 교정을 도와주신 선생님이 제 어투와 문체를 가능한 한 살려두는 게 나을 것 같다고 하셔서 표현이 다소 매끄럽지 못한 부분들이 있지만, 그대로 출판했어요. 돌이켜보면 그것이 오히려 저의 색채를 드러내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책의 일러스트를 아내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처음부터 두 분이 함께 작품을 계획하셨는지요?

책을 쓰기 시작하면서 재미있는 이미지가 들어가면 더 실감 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을 넣으려다, 옆에서 기웃거리던 아내를 제가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게 되었죠. 처음에는 페이지 몇 개만 하려고 했는데 미술 전공인 아내가 저는 생각지도 못한 이쁜 그림들을 그려내더라고요. 그래서 전적으로 맡기게 되었어요. 아마 이런 그림이 없었다면 이 책은 ‘앙꼬없는 찐빵’이 되었을 거예요.
요즘은 누구나 쉽게 책을 발행할 수 있는 시대라고 하는데, 실제로 책을 쓰고 출판을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계획했던 책을 완성하셨는데 소회가 어떠신지요?
가장 좋았던 점은 큰 보람을 느꼈다는 거예요. 제가 살아온 삶의 흔적을 생각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좋았고, 제 삶 전체와 함께하신 어머니께서 책을 읽으시며 좋아하실 모습을 상상하며 쓰는 과정도 무척 행복했어요. 그리고 제 아내가 함께 참여한 첫 책을 낸다는 자체가 의미 있고 기쁜 일이기도 했고요. 책이 출간되면 작은 기념회 자리를 마련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었는데 마침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하기 시작하던 시기여서 그러질 못했죠. 무척 아쉬웠어요. 그런 복병이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거든요.
작가와 직장인으로서 일과 병행하며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을 텐데, 그 과정이 어떠셨는지요?
작년에 글쓰기를 시작하고 여름 무렵 회사에서 하던 큰 프로젝트가 마무리돼서 그 후 빠르게 진행할 수 있었어요. 평소에 조용한 걸 좋아하다 보니 주로 밤 시간을 많이 이용했고요. 처음부터 관용어 200개가 목표였고, 한 장을 쓸 때마다 몇 퍼센트를 썼는지 그 과정을 체크할 수 있어서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 목사님께서 “글을 쓸 때는 꾸준히 써야 한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그래서 재택근무를 하는 요즘도 매주 조금씩이나마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을 출간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자신의 책을 발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주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아무래도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혹은 관심이 있는 분야에 관해 쓰는 것이 제일 좋겠지요. 저는 동물을 좋아해서 그 관심이 책으로 발전되었으니까요. 두 번째는 책을 읽는 타깃을 생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이 책은 저희 어머니와 연로하신 어머니 친구분들이 많이 보실 것을 고려해서 아내가 폰트 크기까지 세심하게 배려했거든요. 세 번째는 책을 위한 리서치를 많이 해야 해요. 제 책만 해도 모든 관용어를 다 채택하지 않았거든요. 그중 몇 개는 어원이나 구성이 확실치 않은 것도 있어서 제외했죠. 좀 더 완벽한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디테일한 리서치가 중요해요. 그리고 마지막은 책을 출판할 때 서로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도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첫 책 출판을 시작으로 이제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을 계획하고 계실 것 같은데 작가님께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지,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아무래도 대기업의 회계직은 회계만 하는 것이 아니고 직위가 올라가면서 경영과 세일즈, 모든 것을 섭렵해야 하므로 스트레스가 많아요. 세상 기준의 성공을 위해 달려가기보다 소박하지만 제가 좋아하는 일, 스트레스를 덜 받는 일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중 하나가 글쓰기라 앞으로 더 많은 글을 쓰고 책을 발표하고 싶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 내가 사랑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을 찾아 떠나는 여행 같다고 할까요? 글을 쓰는 동안은 행복하고 즐겁거든요. 지금 제가 구상 중인 아이디어가 몇 가지 있는데, 다음에 출간할 책 역시 영어를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도록 유익을 제공하는 책으로 엮을 계획입니다. 이번 책은 판매 목적보다는 어머니께 선물로 드리고 싶어서 비매품으로 출판했지만, 다음 책은 더 많은 분이 접할 수 있도록 잘 꾸려 볼 생각입니다.
혹시 작가님의 책을 읽어보길 원하는 분이 있다면 어떻게 구매할 수 있는지요?

이 책을 읽으시고 관용어들을 직접 구사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직장에서나 일상생활에서 이런 부류의 관용어를 접하게 되었을 때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실 수 있다면 저로서는 더 큰 보람이 없을 것 같아요. 아직 책 여분이 있으니, 원하시는 독자님들은 저에게 이메일로 연락해 주시면 됩니다. 책값은 어려움 중에 계신 분들을 위해 제가 섬기고 있는 뉴저지 찬양교회에 구제헌금으로 드릴 계획입니다.
긴 시간 화상으로 즐겁고 유익한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분이 이 책을 읽고 영어 공부에 큰 도움 얻기를 바랍니다. 작가님의 왕성한 창작 활동도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경철 작가 이메일: kyung_park@msn.com
인터뷰, 글: Nana Huh Editor
사진 제공: 박경철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