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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int Jung, Writer

완탕 수프 Essay by Clint Jung

‘살인적인 물가’란 표현을 체감한 지 오래다. 높은 엥겔지수에 한탄하고, 인플레이션에 눈이 돌아가고 혀를 내두르는 시기는 지났다. 덤덤해졌다. 그동안 한국에 비해 식료품비가 저렴하다고 좋아했던 시절이 마치 한 철이었던 것처럼. 최영미의 시처럼. 잔치는 끝났다 싶다.

지인들과 대화에선 식료품 구매 노하우가 단골 소재로 등장한다. 어디로 몇 날 몇 시 이후에 가면 할인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지, 대체 브랜드나 대체 상품, 할인 쿠폰 정보 등을 공유한다. 유기농에서 무기농으로, 유명 브랜드에서 노브랜드로 차츰 하향 조정되는 소비 습관을 듣다 보면 학창 시절 식비를 절감하려고 애쓰던 때 같다. 교내식당에서 식권을 쓰고 밀 카드를 빌리고. 기숙사에서 저가 브랜드의 번들 라면과 쌀로. 한식은 꿈도 못 꾸게 되면 간단한 오트밀이나 감자 그리고 핫 파켓으로 채웠던 밤들. 한참 지나왔는데, 한 바퀴 돌아서 그 시절로 돌아왔나 싶다. 사는 것은 어쩜 이렇게 변하질 않을까.


이민자들의 1.5세 자녀들은 대부분 중고교 시절부터 파트 타임을 통해 용돈을 벌며 자랐다. 그렇지만 언제나 부족한 것은 돈이었고, 먹고 싶은 것은 너무 많았다. 한국의 학교 주변 즐비했던 포장마차와 먹자골목과 비교하면, 빅애플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였고 식도락을 만족시킬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도시였다. 한인 밀집 지역을 찾아가야 겨우 만날 수 있던 한식당은 거리와 비용 문제로 자주 갈 수도 없었기에 동네마다 위치한 테이크아웃 전문 중국 식당이 대리만족으로 자리했었다.

어렸을 적 즐겨 먹던 음식은 평생 못 잊는다. 지금도 중국 식당에 들르면 수프를 주문한다. 계란국과 마찬가지인 에그 드랍 수프. 육개장이 떠오르는 핫 앤 사워 수프. 동그랗게 말린 만두를 띄운 완탕 수프. <우동 한 그릇:구리 료헤이, 다케모도 고노스케가 공저한 소설> 이야기나 짜장면이 싫다고 하신 어머니를 부르던 지오디의 노래(GOD:어머님께) 정도는 아니지만, 그 중 완탕 수프는 학창 시절을 회자하는 아이콘 중 하나이다. 학기가 시작되면 들어오는 새내기와 친해지려는 방편으로 방과 후 만나 중국 식당에 들러 완탕 수프를 시켜주었다. 뭔가 대단한 음식이 나오리라 기대하고 따라온 그가 실망한 모습을 보이면 진지하게 말했다. 보기엔 이래도 먹어보라고. 한국에서 먹던 어묵탕 맛이라니까.


이역만리 한 동네. 낡은 테이블에 모여 가장 저렴한 음식을 시켜놓고, 왁자지껄 웃으며 먹던 날들. 그 시간들이 잊지 못할 소확행이었다.


사실 전 세계에서 뉴욕시만큼 많은 식당이 포진된 곳이 있을까. 연차가 쌓이고 활동반경이 넓어지다 보니, 고가의 스테이크 하우스나 펍들만 즐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회준비생들도 가성비 갑의 다채로운 먹거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레이스 파파야, 할랄 가이스, 고고 카레, 테리야끼 보이스, 타코 벨, 화이트 캐슬의 미니 버거, 웬디스의 칠리... 패스트푸드점도 이용할 수 없이 재정 상태가 열악해지면 최후의 보루로 푸드 카트가 있었다. $1 언저리에 해결할 수 있던 베이글, 프레첼, 케밥, 핫도그. 그리고 추가로 정체 모를 치즈를 얹은 슬라이스 피자. 한 끼 식사하는 것이 아닌 때우는 것으로도 몇 정거장을 걸어가야 했던 일상들. 주거비를 줄일 수는 없으니 언제나 졸라맸던 것은 교통비와 식비. 그때는 시간이 돈보다 저렴했던 시절이었다. 좀비처럼 무작정 걸어 나가야만 하던 시기였다.

식당에 들러 메뉴를 훑어보다가 수프를 주문한다. 고단한 시기, 함께 버텨왔던 음식을 떠올리다 보니. 그리워졌다. 열정 가득했던 때의 나를 기억해내려 애쓴다. 그리고, 네가 그리워졌다. 우리가 함께했던 때를 추억하다. 완탕수프를 마주하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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