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된다면... February Essay by Clint Jung
나는 여전히 LP나 CD로 듣는 음악을 좋아한다. 출근할 때면 때때로 MD 플레이어나 MP3 플레이어를 휴대하고 나서기도 한다. 새로운 음악들은 주로 YouTube나 Spotify를 통해 접하지만, 예전 음악들은 음반 수납장에 있는 앨범을 꺼내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 데스크탑 컴퓨터를 샀을 때, 당연히 있어야 할 디비디 롬 드라이브가 없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 회사 동료에게 하소연했더니, ‘잘 찾아봐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도 없을걸’이라며 놀렸다. 요즘 세대들에겐 플로피 디스크나 CD, DVD는 모두 매한가지 전 세대 유물이었다.

나는 음악을 듣는 것도 좋아하지만 음악을 들려주는 것도 좋아한다. 며칠 전 넷플릭스에 올라온 MIXTAPE 이란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았는데, 창고에서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긴 노래 믹스테이프를 발견한 여주인공이 망가진 테이프에 적힌 제목 리스트로 노래를 찾다가 부모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을 담긴 내용이었다. 가끔 나도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음악, 글들을 유산처럼 남겨 우리 딸이 커서 나를 이해하고 기억해 주는 것을 상상해 보곤 한다. 그래서 책 낭독을 녹음하거나 유튜브 클립을 만들어 놓을까 구상하곤 했는데, 믹스테이프를 보다 보니 어느새 감정이입이 되어선 어떤 노래들을 담아 그녀가 들어보게 할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는 믹스테잎을 만들어 지인들에게 곧잘 선물로 주곤 했었다. 60~90분짜리 테이프의 앞뒤를 다양한 장르의 스토리텔링 시작과 끝으로 꽉꽉 담는 작업은 언제나 즐거웠다. 녹음하는 첫 곡과 끝 곡은 대부분 연주곡으로 담았었는데 지금 믹스테이프를 만들어 딸에게 전해준다면 그런 방식을 따를 것이고 첫 곡은 바로 스티브 바라캇(Steve Barakatt)의 ‘레인보우 브릿지(Rainbow Bridge)’라는 연주곡일 것이다.

결혼 전 아내와 장거리 데이트를 하던 시절, 한국에 있던 그녀에게 매일 내가 좋아하는 노래 한 곡을 들려줬었다. 그러다가 딱 한 번 그녀가 좋아하는 노래를 내게 보내줬었는데, 그때 처음 듣고 알게 된 스티브 바라캇의 피아노곡이었다. 그리고 얼마 후, 크리스마스 때 뉴욕에 찾아온 그녀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갔었다. 거기엔 캐나다와 국경을 잇는 다리가 있었고, 이름이 레인보우 브릿지였다. 국적이 다르고 사는 곳이 다른 두 사람을 만나게 하는 다리. 그녀가 묻기를,
-설마, 여기 있다는 걸 알고 온 거야?
-몰랐어. 운명인 것 같은데?
스티브 바라캇이 캐나다 퀘벡 출신인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는 정말 그 브릿지에 대한 곡을 썼던 것이다.
이듬해 바로 그녀를 만나러 한국 여행을 갔다. 한겨울에 갈 수 있는 관광명소를 찾다가 파주 프로방스 마을 빛 축제에 들렸다. LED 야경을 한참 구경하다 지쳐 카페에 들어가 앉자, 들려오는 음악이 ‘레인보우 브릿지’였다. 이건 너무 짜 맞춘 것 아닌가 싶게, 한국을 여행하는 동안 심심치 않게 이곳저곳에서 이 노래는 흘러나왔고, 우리의 운명을 대변하는 곡처럼 되어버렸다. 그리고 결혼한 뒤 미국에선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그 당시의 나만 몰랐던, 이 곡은 한국에서 특히 그리고 대단히 유명한 곡이었다.

훗날 우리 딸이 영화처럼 아빠의 믹스테이프를 발견한다면. 이 노래를 들을 때, 아빠 엄마가 만났을 때 함께 보고 들었던 풍경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어디에선가 다시 우연히 이 노래를 듣게 된다면. 그때마다 아빠를, 엄마를 떠올려 주겠지.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음악 감상.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던 당신만의 DJ.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Mixtape Trailer
Rainbow Bridge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