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우편함을 열어보다가... Essay by Clint Jung, Writer

우편함을 열었더니 이번 달도 잊지 않고 광고지와 함께 청구서가 쌓여있다. 대부분 온라인 지불을 이용하지만 몇몇 청구서들은 여전히 우편만을 고집한다. 체크를 다 쓰고나서 서랍을 열어보니 우표가 없다. 오랜만에 우체국으로 향한다.

요즘은 도통 편지를 쓸 일이 없어서 우표를 자주 사러 가지 않는다. 손편지는커녕 이메일을 받는 것도 감지덕지. 쓰지도 않고, 받지도 않고. 옛말이 되어버린 서신 왕래. 외로운 날은 정크메일마저 반갑다. 한 지인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당시 사람과의 대화가 몸서리치도록 그리웠었는데, 초인종 소리가 울려 나가보니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사람이 반가워 차 한잔 대접하겠다고 들여앉혀선 몇 시간 동안 담소하다 겨우 보내주었다던 웃픈 이야기. 세상의 소통은 점점 더 짧은 문자, SNS 쪽지로, 거기에 더 줄여 초성과 이모티콘의 대화로 변모했다. 기술 발전 때문에 세상은 더욱더 편해졌는데, 낭만을 찾기가 불편해졌다. 낭만이 장황한 글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지만. 왠지 더 외로워진 것은 사실이다.


생각해 보면 내 최초의 수집품은 우표였다. 내겐 형이 한 명 있는데, 우리가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의 어느 날, 아버지께서 우리를 부르시곤 너희도 이제 좋은 취미를 가져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셨다. 제 취미는 독서와 바둑인데요... 라고 분위기상 말할 수는 없었다. 잠자코 있자, 그전까지 보여주지 않으셨던, 학생 때부터 지금껏 모으셨다는 우표 수집 첩을 꺼내셨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나누어 가져라’.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우리 형제는 수집 첩을 가득 채운 알록달록한 기념 우표들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바로 결정했다. 앞으로 우리 취미는 우표수집이다!

아버지는 시간이 오래 흐르면 우표의 가치는 오른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모아놓은 우표들은 발행 연도가 그리 오래되진 않았었다. 현재 가치는 액면가에 가까운, 높지 않다는 얘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Priceless, 값을 따질 수 없는 보물, 최초로 증여된 유산상속이었다. 감동한 나머지 정말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나누어 가지자고 합의했다. 부모님 출타 중에 마주 앉아 기념 우표들을 하나하나 꺼냈다. 테두리가 있는 기념 우표들은 테두리를 뜯어내어 나누고, 넉 장, 여덟 장 또는 열 장씩 다닥다닥 붙어있는 우표들도 점선 따라 깔끔하게 찢어서 나누었다. 시간이 꽤 걸렸지만 행복했다. 나중에 아버지가 우표들은 잘 나누어 가졌냐고 물으시길래 정확하게 반반 나누어 가졌다고 자랑스레 대답했는데, 자초지종을 알게 된 아버지의 표정은 뭐랄까, 복잡다단해 보였다.


우리가 우표를 수집했던 방법은 간단했다. 우편물에서 도장이 찍힌 우표를 떼내어 갖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집엔 해외에서 오는 우편물도 없었고, 등기우편도 없었고, 소포도 없었고, 죄다 일반 우표가 붙여진 일반 우편뿐이었다. 몇 장 모으니 더 이상 새로운 것을 구할 수가 없었다. 기념 우표는 베고니아 화분이 놓인 우체국에 가서 사면 될 텐데, 너무 당연했던 모양인지, 그 사실을 누구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동네에 있던 뉴코아 백화점에 기념 우표 판매 부스가 들어섰다. 용돈이 모이면 주말에 들려 몇 장씩 구입할 수 있는 장소가 드디어 생긴 것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판매처 누님들은 예뻤으나 예쁜 우표들은 별로 없었다. 거의 모든 디자인이 전,현직 대통령 얼굴이었고, 새로 발행되던 우표도 죄다 대통령 기념 우표였는데, 해외 순방이나 외국 대통령들이나 수상들의 방문을 기념하며 같이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판매가는 대부분 액면가의 몇 배에서 몇십 배까지 있었다. 용돈도 별로 없는데 비용이 꽤 드는 이 취미생활은 초등학생에게는 사치였다. 한동안 우표판매소를 들렀다가 일이 년이 지나니 흥미는 사그라지고 말았다. 미국에 이민 와서도 우체국에 들릴 때면 가끔 기념 우표를 구입하곤 했었다. 그런데 같이 공유하거나, 자랑할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관심이 깊어질 텐데, 우표를 모으거나 관심 있어 하는 사람은 도대체 만날 수가 없었다. 우표수집은 여전히 사치스러웠고, 흥미를 유지하기 쉽지 않았다. 찬란했던 구시대의 취미생활로 남겨진 것 같았다.

그러다가 결혼 뒤, 아내를 통해 우표에 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방편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엽서와 우표를 구입하고 ‘나에게 쓰는 편지’, 신해철의 노래 제목처럼 자신에게 엽서를 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돌아오기 전에 자신의 집 주소로 부친다. 해외 여행지일 경우, 중간에 분실되기도 쉽고, 어떨 때는 받기까지 한 달이 넘게 걸리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의 기억도 어느새 잊혀질 즈음, 우편함에서 낯익은 손글씨를 발견하면 여행의 감정과 기억이 다시 메아리침을 경험한다. 그녀는 그때 그 순간들의 감정들을 수집하고 있었다. 우연히 우체국에 들렀을 때 생각나서 사 모으던 내 우표 컬렉션과는 사뭇 다른, 설레고 낭만스럽기까지 우표를 모을 수도 있겠구나. 펜데믹으로 인해 몇 년간 우리의 여행계획은 모두 흐지부지되었지만, 그 수집을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조만간 다시 떠나게 되면. 마스크를 벗고 다시 봄을 맞이하게 되면. 그녀가 묻는다. -그때가 도대체 언제야?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