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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oung Choi Editor

재일교포 3세, 드라마 ‘파친코’ 컨설턴트 신화지(Hwaji Shin) 교수

역사는 미래를 투영한다.


최근 애플 TV+를 통해 소개된 화제작 ‘파친코’는 전 세계인의 극찬받으며 인기리에 상영되고 있는 대하드라마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관심을 받았던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 씨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1,000억대의 어마어마한 자본을 투자해 만든 블록버스터급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흥행보증수표라는 최고 인기 배우들이 대거 출연해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지만, 동북아 역사와 식민 지배의 아픔을 지닌 자이니치(재일 조선인)의 대를 이은 생존기를 다뤘다는 점에서 그들과 피를 나눈 한국인으로서, 또 미국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아주 각별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자이니치 코리안의 특별하고도 지난했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존재를 전 세계에 알린 파친코 드라마에는 실제 자이니치 코리안으로 살았고 그들의 삶을 증언하며 드라마 작업에 컨설턴트로 참여했던 사람들이 있다. 지난 5월, 터치 스토리랩은 파친코 드라마의 컨설턴트였던 샌프란시스코 대학의 신화지 교수를 인터뷰했다. 애플 TV와의 계약상의 이유로 파친코 드라마 컨텐츠 자체에 대한 신화지 교수의 개인적인 의견은 피력할 수 없지만, 자이니치 코리안으로 살았던 신교수의 삶과 현재 대학에서 인종과 민족성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미국에서 마이너리티로 살아가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정 보다 길어진 줌 인터뷰에서는 의미 있는 많은 이야기가 오갔지만 지면 관계로 다 전달할 수 없는 아쉬움을 전하며 정리된 인터뷰 내용을 소개한다.

안녕하세요 교수님, 자기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샌프란시스코 대학교에서 사회학자이자 부교수로 재직 중인 신화지입니다. 저는 재일교포 3세로, 일제강점기에 저의 조부모님께서 일본으로 건너가 정착하셨고, 저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저는 가끔 저 자신을 ‘일본산’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합니다. 미국에 온 지는 20년이 넘었고 처음에는 뉴욕에서 그리고 지금은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 대학에서 일본과 미국의 맥락에서 다뤄지는 인종과 민족성에 대해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애플 티비의 인기 드라마, 파친코 제작에 컨설턴트로 참여하셨다고 들었는데 너무 멋지십니다. 파친코는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둔 작품인데 소회가 어떠신지, 이 드라마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네, 매우 신나고 흥분되면서도 동시에 여러 가지로 마음이 쓰이는 부분도 있습니다. 파친코는 가족의 트라우마를 다룬 드라마이고, 재일교포는 세대에 걸친 트라우마를 가진 공동체입니다. 서양에서 재일교포란 ‘눈에 띄지도 않는 소수자’에 불과하며 우리는 그 어떤 헐리우드적인 방식(영화나 드라마 등)으로 우리의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글로벌한 미디어를 통해 우리가 소개된다는 것은 우리가 침묵하는 무형의 존재가 아님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드라마가 미국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이기 때문에 얼마만큼 진정성을 담보하는지, 그리고 온 세계가 우리의 존재를 어떤 시각으로 봐줄지에 대한 약간의 우려가 남긴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진실을 전달하고 우리 삶의 거울과도 같은 역할을 하는 미디어의 힘에 대해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플랫폼을 통해 재일교포로서의 우리의 존재를 제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일종의 치유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에게 이 드라마는 우리가 가진 트라우마로부터 치유될 수 있는 최초의 할리우드적인 방법이며, 드라마가 갖는 파워풀한 가시성(Visibility)에 대해 기쁘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교수님은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고 미국에 20년 이상 사셨다고 하셨지요. 교수님의 경험에 비추어 일본과 미국 두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것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삶은 현재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는지요?


현저한 차이도 있지만 중요한 유사점도 있습니다. 제 경험상 재미교포와 재일교포의 가장 큰 차이점은 미국과는 달리 일본에는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이 많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제가 ‘한국계 일본인’ 혹은 ‘일본계 한국인’이라고 절대 말하지 않습니다. 둘 다인 동시에 어느 쪽도 아닙니다. 제 생각에 '자이니치'라는 말이 생겨난 배경에는 일정 부분 재일교포 커뮤니티 내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식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재일교포와 미국 내의 소수민족은 강제 이주를 당하고 실향민이 되어 그 나라에 동화되는 비슷한 경험이 있다는 유사점이 있습니다. 만일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아니었다면 저의 할아버지는 소년 노동자로 한국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다면 저의 1세대 가족들은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도 자기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으로 끌려와 강제로 노예가 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야만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제게 깊은 울림을 주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 저의 일본 생활을 돌이켜보면 전반적으로 얻은 것이 참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일식을 좋아하고 일식과 한식을 혼용하는 요리도 곧잘 합니다. 또 일본에서의 경험을 통해 다른 공동체를 실질적으로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특히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미국 시민 인권 운동’의 힘을 좀 더 피부로 느끼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특정 국가에 속하지 않고, 어떤 틀에 얽매이지 않으며, 서로 다른 문화를 자유롭게 향유하며 온전한 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어린 시절 일본에서의 삶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유익입니다. 제 삶의 그런 경험들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존재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민자들,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여전히 ​​조직적인 편견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으며, 정부 당국이 그들의 잠재력과 가치를 발견하지 못할 때 이민자들의 사기는 더욱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소수민족들이 무언가 잠재력을 지닌 가치 있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킬만한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또한 미국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아시아계 소수민족의 긍정적인 측면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저는 늘 ‘이민자 없는 미국에는 무엇이 남겠냐’고 되묻곤 합니다. 이민자들은 이 나라의 중추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지금 그렇게 취약한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인종 차별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죠. 우리는 빈센트 친(Vincent Chin-1982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중국계 미국인인 빈센트 친이 공장에서 해직당한 2명의 미국 백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의 죽음과 여성들에 대한 수많은 성폭행 사건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더욱이 지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이러한 폭력은 더욱 심해졌다고 하죠. 그래서 소수 이민자들은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두가 함께 강력한 노력을 해야 하며, 그것이 전제될 때 희망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국 내 이민자, 소수자, 소외된 자들이 경험을 공유하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제 경험을 통해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 가장 친한 친구는 한국계 미국인 동성애자이고, 저는 일본에서 자랄 때 한국 이름 대신 일본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어서 서로 감추고 싶은 비밀을 간직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한 아무도 제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없었거든요. 우리가 친구가 된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진짜 모습을 숨기고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서로 간의 암묵적인 이해와 공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고 단순한 우정이 미국에서는 소외된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서로 연대하는 힘이 되기도 한답니다.


교수님께서는 현재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시는데, 이 학문을 택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제가 사회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제가 자라면서 받은 교육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제가 겪었던 억압과 차별에 대해 누구 하나 속 시원히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더욱이 일본에 머무는 한 그다지 미래가 밝아보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마침 제가 가장 관심을 가진 수업이 인류학과 사회학이었습니다. 이 공부를 통해 나는 스스로를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최대한의 삶을 살 수 있는 언어, 그리고 도구를 찾았고 용기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교수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었고 지속해서 연구하고 공부하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리버럴 아츠 칼리지(Liberal Art College)의 교수가 되었습니다. 교단에 있으면서 아시아계 미국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라틴계 미국인 등 훌륭한 학생들을 많이 만났고 그들을 통해 저 자신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자기 삶을 온전히 살고 싶었기 때문에 자신을 정의할 언어와 도구를 찾기 위해 늘 최선을 다하죠. 교수로서 제가 하는 일이 바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찾고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 일이 정말 즐겁기도 하고 특히 제가 그들의 삶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것 같아 너무 좋습니다.


끝으로 파친코를 시청하는 많은 사람에게 교수님이 권해주실만한 가장 중요한 관전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파친코는 한 가족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설의 서두는 "역사는 우리를 실망시켰지만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로 시작합니다. 소설과 드라마 둘 다 서로 다른 상황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세대를 거치면서 어떻게 완성되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죠. 바라기는 이 드라마를 시청하는 사람들이 무엇보다 우리 개인의 역사와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고 그들과 교제할 수 있는 것이 선물 같은 것임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자이니치 한국인의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여전히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그들은 북한, 남한, 일본, 미국 간의 갈등 속에 갇혀 있다가 나중에 이들 모두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을 그런 어두운 역사가 낳은 기적의 산물로 여깁니다. 엄혹한 식민지 시절 일본에 온 우리의 조부모가 전쟁과 가난, 억압 또 인종주의, 불황, 죽음과 질병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또 한 세대가 다음 세대로 삶의 횃불을 굳건히 쥐여주며 그들이 온전히 살아가도록 지속적인 격려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천은 어디 있었을까요?


우리의 트라우마를 인정함과 동시에 우리가 그런 취약한 환경에서 어떻게 지금과 같은 성과를 이뤄냈는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과거를 잊지 않는 한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근간이 된다는 점입니다. 과거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현재를 진실하게 살 수 있으며, 스스로를 위한 밝은 미래가 있음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미주 한인들이 교수님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돌아보고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지닌 ‘당당한 마이너리티’로서 자존감을 키울 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서 그들을 지지하고 돕는 강력한 커뮤니티가 되면 좋겠습니다. 또한 소수민족끼리의 연대를 도모하는 일에도 더 활발히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Interview: Jabin Choi, Guest Editor/Translated by Young Choi,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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