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on Choi, Jazz Musician
조지 벤슨(George Benson)과의 짧은 만남을 추억하며 듣는 ‘Oh, Darling’
지난해 터치 매거진 ‘재즈가 있는 저녁’ 코너의 연재를 처음 부탁 받았을 때 나는 내 개인적인 취향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곡씩 재즈 음악을 소개하겠노라고 마음을 먹었었다. 그런데 한 달, 두 달 코너를 채우면 채울 수록 적지 않은 부담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의 선곡이 너무 어렵거나 거북하지는 않았을까, 지나치게 개인의 취향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을까 혼란스러워진 것이다. 그래서 2022년에는 재즈가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큰 부담감 없이 들을 수 있는 Easy Listening Jazz를 중심으로 선곡해보려고 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 흐르는 대중적인 재즈, 혹은 팝과 크게 구분되지 않으면서도 재즈 특유의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곡들을 골라 소개하려고 한다. 부디 나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전달될 수 있기를 바라며 새해 첫 곡을 소개한다.
흔히 대중음악은 멜로디와 가사가 담긴 보이스를 중심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쉽게 들리지만, 재즈는 노래 없이 피아노, 드럼, 베이스, 트럼팻 등 악기로만 구성된 경우가 많다보니 대중음악보다는 접근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재즈 음악에도 멋진 보이스가 담긴 곡들이 의외로 많아서 보컬이 있는 재즈부터 듣다보면 재즈 음악이 좀 더 친숙하게 들릴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곡은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또 가수로 잘 알려진 조지 벤슨(George Benson)의 ‘Oh, Darling’이라는 곡이다. 어린시절부터 기타 신동으로 주목을 받았던 조지 벤슨은 11살에 본격적인 가수로 데뷔하였고 1960년대에 소울 재즈로 큰 명성을 얻은 뮤지션이다. 이후 재즈, 팝,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스캣 음악까지 섭렵하며 모든 장르를 아우르는 미국을 대표하는 뮤지션이 되었고 그래미 상(Grammy Award)도 수차례 수상한 바 있으며, 1990년에 버클리 음대로부터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나에게는 이 위대한 뮤지션, 조지 벤슨과의 아주 특별한 추억이 있다. 1990년대 중반, 버클리 음대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내려온 나는 대학 후배가 운영하던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뮤직 디렉터로 일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녹음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오는 가수들이 적지 않았던 터라 스튜디오는 연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했다. 전날도 늦게까지 작업을 하느라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취해 있었는데 아침 일찍 후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장 일어나서 뉴저지로 넘어오라는 다급한 전화였다. 전날 가까스로 마친 레코딩에 문제가 생긴줄 알고 부랴부랴 뉴저지로 건너갔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무슨 일이냐 물었더니 후배가 상기된 얼굴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다. “형, 조지 벤슨이 우릴 집으로 초대했어!”
사실 후배는 뉴저지의 알파인(Alpine)이라는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조지 벤슨이 이웃에 산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곤 했었다. 우리는 가끔 그의 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지만 그가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는 말은 좀처럼 믿기 어려운 그야말로 서프라이즈였다. 몇 번이고 진짜냐고 되물으며 후배와 함께 조지 벤슨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옷이나 좀 제대로 입고 올걸…’ 내심 안타까워 했던 기억도 있다. 조지 벤슨의 집은 작은 계곡이 흐르는 큰 암반 위에 멋지게 자리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물길 위에는 절대 집을 짓지 않는다는 풍수를 들은 적이 있어 오래 전 기억이지만 그 집의 자태가 비교적 또렷하게 뇌리에 남아 있다.
어떤 사람의 안내를 따라 지하 녹음실로 들어갔더니 조지 벤슨을 비롯해 그야말로 Soul Music의 대가들 열 명 가량이 뭔가 복잡한 작업을 하는 듯 보였다. 연주를 하는 것은 아니고 모니터링과 편집 작업만 하는걸로 봐서 녹음이 거의 완성단계에 왔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후배와 나는 숨죽이고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았다. 두 시간 정도 다양한 토론이 이어진 끝에 작업은 끝이 나고 모두들 위층으로 올라가 스낵과 음료수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죠지 벤슨은 한국에서 온 촌스러운 두 뮤지션이 지루해할까봐 한국은 어떤 나라인지(당시에는 한류라는 것이 없던 시절이라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모르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한국에서는 어떻게 녹음을 하는지, 이런저런 질문을 건냈고 우리는 신이 나서 떠들며 즐거운 대화를 이어갔다. 한국에서는 그다지 실력도 없으면서 유명세만 앞세우던 연예인을 숱하게 봐왔던 나에게 조지 벤슨의 소탈하면서도 우리를 존중해주는 겸손한 태도에서 그의 인간미와 됨됨이를 느낄 수 있었다.
함께 작업하던 대다수의 뮤지션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드러머와 올겐주자 그리고 조지 형님 세 분만 남게 되자 보여줄 것이 있다며 우리를 스튜디오로 데려갔다. 그건 다름 아닌 트리오 잼이었다. 드럼, 기타, 키보드 세 악기로 편성된 트리오였지만 올겐을 연주하던 분이 해먼드와 키베이스를 동시에 연주하며 꽉 찬 앙상블을 만들어 냈다. 40여 분간 이어지던 트리오 잼이 끝나자 조지 형님은 혼자 Danny Boy를 연주하며 자유로운 기타솔로의 환상적인 음악을 들려주었다. 멋드러진 멜로디 연주도 놀라웠지만, 흔히 애드립이라고 하는 재즈에서의 즉흥 연주는 숨이 멎을 지경이었다. 드럼과 올겐을 담당했던 연주자들도 진심으로 조지 형님을 존경하는 것처럼 보였고, Supportive하게 반주하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이름 없는 한국의 두 뮤지션을 위해 감히 값을 매길 수 없는 라이브 공연을 직접 펼쳐주신 그날의 조지 형님은 내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추억을 안겨주었고, 그들의 연주를 보면서 음악이 어떻게 삶이 되는지, 또 진정한 예술가의 품위란 무엇인지를 깊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조지 형님의 노래와 연주를 들을 때마다 나는 오래 전 그날의 에피소드가 떠올라 말할 수 없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다만 그 당시에는 휴대폰은 고사하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싸인 한 장 받은 것 외엔 이렇다 할 흔적을 남겨놓지 못한 것이 무척 안타깝고 후회스럽다.
1월에 선곡한 Oh! Darling은 사실 비틀즈가 1969년에 발표한 곡으로, 음반 발표 후 3주 만에 조지 벤슨이 재즈 스타일로 리메이크해 발표한 곡이다. 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초반의 로큰롤 시대에는 실력 있는 재즈 뮤지션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펼치기 어려웠고, 능력을 인정받을 기회가 적다보니 생계를 위해 당시 유명가수들의 노래를 리메이크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틀즈 ‘Oh Darling’의 조지 벤슨 버전은 사실 리메이크 음악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사례로 손꼽힌다. 비틀즈의 원곡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팝과 재즈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벤슨은 이 노래 한 곡만 리메이크 한 것이 아니라 비틀즈의 명반으로 알려진 ‘Abbey Road’ 전체를 재즈 스타일로 재해석해 ‘The Other Side of Abbey Road’라는 타이틀로 발표하기도 했다. 비틀즈 음반 표지에는 맨발의 폴 매카트니 (Paul McCartney)를 포함해 네 명의 멤버가 길거리를 횡단하는 비틀즈의 상징적인 사진이 담겨 있는데, 조지 벤슨은 이를 패러디해 기타를 메고 맨해튼 54번가 미드타운을 가로지르는 사진을 앨범 표지에 올려 보는 사람들에게 웃음까지 덤으로 선사해 주었다.


흔히 조지 벤슨의 목소리를 벨벳처럼 슬릭하다는 표현을 많이 한다. 그건 그가 가진 음색이 그렇기도 하지만, 소울 음악은 물론이고 재즈, 팝, 리듬 앤 블루스, 그리고 스캣 음악까지 섭렵한 그의 저력이 독특한 그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입으로 낼 수 있는 소리는 모두 기타로 연주할 수 있고, 기타로 내는 모든 소리 역시 입으로 똑같이 재현할 수 있는 특별한 기교를 가진 사람이며, 나는 그의 그런 연주를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이라 단언할 수 있다.

Oh Darling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조지 벤슨의 달콤한 보이스지만, 돈 세베스키(Don Sebesky)의 자유로우면서도 고급지고 세련된 편곡에, 조지 벤슨의 기타가 만들어 내는 블루스한 그루브, 그리고 프레디 허버드(Freddie Hubbard)의 트럼팻, 소니 포춘(Sonny Fortune)의 알토 색소폰, 휴버트 로스(Hubert Laws)와 제롬 리차드슨( Jerome Richardson)의 플루트가 담아낸 가벼운 솔로들이 음악 곳곳에 적절히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비틀즈의 원곡이 그만큼 훌륭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리메이크 된 조지 벤슨의 음악에는 왠지 모를 인간미가 녹아 있어 들을 때마다 내 개인 취향에는 훨씬 더 잘 맞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조지 형님과의 추억이 음악 위로 오버랩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2022년은 재즈가 좋아졌다는 독자들의 피드백을 기대하며 조지 벤슨의 Oh Darling과 나의 오랜 추억을 슬쩍 버무려 소개한다. 모두들 Happy New Year!

Joon Choi, Jazz Musician
Berklee College of Music, B.M.
1985 그룹사운드 다섯손가락 베이시스트
1988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키보디스트
편곡가, 영화음악가, 연주자
Fairleigh Dickinson University, 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