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주말 보내기, Essay by Clint Jung
Netflix로 주말을 위로하는 요즘,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 빠져있다. 박해영 작가의 전작<나의 아저씨>를 최애해왔기에 그녀가 4년 만에 집필했다는 이번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다. 경기도 끝자락에 위치한 농촌 마을에서 살면서 서울로 직장을 다니는 세 남매. 사회생활, 사랑과 이별, 가족과 이웃들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30대가 겪는 아픔과 고민을 위로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4-50대가 보아도 공감할 수 있게 잘 엮어놓은 웰메이드 드라마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은 전철, 버스, 도보로 이어지는 주인공들의 장시간 출퇴근 풍경이다. 매회 나오는 그 장면들 속엔 직장인들의 고단함이, 사랑의 애틋함이, 삶의 치열함이 담겨있다. 그리고 가끔 올려다보는 하늘은, 주인공들의 감정과 다르게 푸르기만 하다. 드라마가 진행하는 동안 매번 사건의 시작을 알리는 매개체 역할을 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있다. 전철 안에서 보이는 교회 벽에 걸려있는데,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오늘의 운세 같은 글 한 줄을 마주칠 때마다 여주인공 민정은 안도하고 희망한다. 오늘은 정말 좋은 일이 생기기를. 그러나 그 현수막이 화면에 비치면, 아이러니하게 불행이 찾아온다. 주인공은 알고 있을까. 알면서도 속고 속기를 반복하며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희망 고문을 하는 것일까.
그 현수막은 내 감정도 흔들었다. ‘오늘 당신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라는 문구보다도 같이 적혀있던 교회 이름이 그랬다. 주인공들이 사는 경기도 외곽 어느 한 곳에 위치해 있는 설정으로는, 그 교회가 실제로 그 지역에 존재하는지는 알 수는 없다. 드라마 제목을 잇는 뻔한 클리셰로 쓰였나란 생각보다, 내 기억에 있는 교회명이나 기억에 없는 교회이기에 그랬다.

광복 후 북한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서울 용산구 남산 한 자락에 모여 살기 시작한 판자촌 동네를 해방촌이라 불렀다. 그 가난한 동네 언덕에 십자가를 올려세운 교회 이름은 해방교회. 황해도를 떠나온 조부모님이 다니셨고, 부모님과 영유아 시절의 우리 형제가 다녔던. 집에서 버스를 여러 번 갈아타서야 갈 수 있었던, 너무 어렸던 탓이라 지금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은 교회의 이름이었다.
중학교 졸업 후 학교 추첨이 집에서 상당히 멀리 위치한 고등학교가 선택되었다. 남산에 있던 용산고등학교였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로 갈아타고, 다시 한참을 걸어야 했다. 강남 강북을 가로지르던 두 시간 가까이 걸리던 통학길은 드라마에서 세 남매가 보여주던 기나긴 출퇴근의 여정과 흡사했다. 수백 번 왕복했던 등하굣길에 해방교회는 학교로부터 15분 도보 거리였으나 한번 지나쳐보지도 못했다. 기억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실향민들이었던 성도들의 바람을 담아 북한에 가까운 파주시 월롱면에 교회 묘지를 두었다. 저렴하게 관리를 잘해주던 교회 묘지가 있다는 것이 노년층 성도들에겐 안정과 위안을 주었던 것 같다. 특히 할아버지는 볕이 잘 드는 곳이라 기뻐하셨는데. 타지 생활이 얼마나 빠듯한지 십 년에 한 번 겨우 찾아가 보는 파주시 해방교회 공원묘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와 동생이 잠든 곳에 대한 기억이. 입관, 발인, 장지에 대한 기억과 더불어 드라마 소품에 박힌 이름을 통해 하나하나 연이어 다가온다.

어릴 적 할머니의 방에서 자주 발견되던 주보 속에 등장하는 교회 이름은 참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를 보며 그 이름을 곱씹게 되니 레트로 감성이랄까. 참 멋진 네이밍이 아닌가 싶다. 짓누르고 있는 모든 것들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우리. 몽실몽실 떠오르는 추억에. 해방을 추앙하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