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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덕후들의 커피가 있는 오후. Caffe Reggio, Table for two

뜨거운 여름 열기가 살짝 누그러진 일요일 나른한 오후에 우리는 그리니치 빌리지를 느린 걸음으로 서성였다. 코로나19 로 인해 비교적 한산해진 맨하탄은 제법 걸을 만 하다. 실내 영업이 불가해 야외로 자리를 옮긴 노상 테이블들이 형형색색 파라솔 아래 낭만적인 운치를 더해주고, 테이블에 나와 앉아 한적하게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여느 때보다 여유로워 보인다. 늦은 밤 야외 가든의 정취가 그리울 때면 이따금 찾던 카페 La Lanterna를 몇 걸음 지나, MacDougal street 초입에 위치한 Caffe Reggio로 향했다. 몸집이 작고 아담한 웨이트리스가 마스크 너머 눈웃음으로 우릴 반긴다. ‘Table for Two’ 말 대신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렸다.

TOUCH storylab image Caffe Reggio

이태리 베네치아의 산 마르코 광장에 카페 플로리안(Florian Caffe )이 있다면,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는 카페 레지오가 있다. 카페 플로리안에 커피 잔을 기우리는 괴테가 있었다면, 카페 레지오에는 정장을 차려입은 움베르토 에코의 깊은 눈빛이 남아있다. 이렇듯 카페는 역사가 기억하는 대가들의 휴식처이기도 하고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성지같은 곳이기도 하다. 커피를 앞에 놓고 사색에 잠긴 그들의 모습이 잠시 눈 앞에 떠올랐다 사라졌다.


Gillies Coffee Company


유럽에 비하면 다소 적은 양이지만 뉴욕은 커피 소비가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18세기 중반 미국(the Port of New York)에 처음으로 커피를 들여왔을 때는 세계에서 세번 째로 많은 양의 커피를 수입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국식 차문화에 익숙해져 있던 뉴요커들에게 커피는 그다지 큰 매력을 주지 못했다.


뉴욕 최초의 커피 회사는 1840년 Lower Mahattan Washington Street에 문을 열었던 Gillies Coffee Company다. 문헌에 따르면 17세기부터 가정주부들이 커피를 집에서 직접 볶아 가루를 타서 마셨다는 기록이 있으나 Gillies Coffee Company가 보급형의 커피를 처음 대중에게 선보였다고 한다. 그즈음 뉴욕의 유명한 발명가 Jabez Burns가 대량으로 커피를 볶는 기계를 발명하면서 커피 대중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커피 맛을 제대로 알지 못했던 당시 뉴욕사람들은 커피라는 음료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고, 더욱이 하루가 다르게 치솟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했던 당시 커피 상들은 점차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다행히 Gillies Coffee Company는 브룩클린으로 자리를 옮겨 최초의 커피 회사로서의 명맥을 유지하며 지금도 운영 중이다. 비록 처음 문을 열었던 지역을 고수하지는 못했지만, 커피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Gillies Coffee Company는 Lower Manhattan을 Coffee District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20세기 들어 커피문화가 급속히 전파되면서 Downtown을 중심으로 다양한 카페들을 양산하는 계기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Caffe Reggio

Caffe Reggio는 초록색 차양을 늘어뜨린 빈티지 외형이 한 눈에 들어오는 작고 아담한 카페다. 1927년 Domenico Parisi가 처음 오픈한 이 곳은 한 세기에 이르는 오랜 세월 동안 뉴요커들은 물론이고 수많은 문학가, 예술가, 그리고 정치인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카페 레지오는 미국 최초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선보인 곳으로 유명하다. 이태리에서 처음 개발된 에스프레소 머신을 본따 1902년에 Mr. Parisi가 직접 제작한 에스프레소 머신을 카페 오픈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은 카푸치노라는 달콤하고 감미로운 완전히 새로운 맛의 음료를 만들어냈고, 커피를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대중화시키는 큰 매개가 되었다.


Original Cappuccino

카페 레지오의 시그니처인 오리지날 카푸치노는 크레마 층이 두텁지 않은 마일드한 에스프레소에 부드러운 우유 거품이 더해져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특색이다. 커피맛이 아무리 좋아도 카푸치노를 잘 만드는 곳은 흔치 않은데, 이곳은 뉴욕에서 처음으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들여온 카페답게 원조 카푸치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며,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카페 레지오의 카푸치노를 맛보기 위해 이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Old Days of Caffe Reggio

코로나19로 인해 내부 좌석이 허용되지 않아 현재 카페 안은 텅 비어있지만, 카페 레지오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예술가들로 늘 가득차 있었고, 짙은 에소프레소 향과 크림 냄새로 뒤덮혀 있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 예술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무드를 느끼게 해주는 카페 내부는 1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 느낌 그대로를 지니고 있으며, 플로렌틴의 메디치 가문이 소장했던 골동품 벤치와 16세기의 흔적을 옮겨놓은 그림들도 카페 레지오가 처음 문을 열었던 그때 그 자리에 조용히 놓여있다. 텅 빈 카페 안을 들여다보며 이 곳을 스쳐간 수많은 사람들이 카푸치노의 달콤함에 취했을 그 순간들을 상상하며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Actress, Author and Movie Star's Favorite Cafe

카페 밖 노천 테이블에 앉아 카푸치노 대신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돋보기를 코에 얹고 신문을 읽고 있는 노신사는 에스프레소 원 샷을 더 추가했고, 마침 오후 햇살이 비켜가는 시간이라 옆테이블에 앉은 젊은 커플은 펼쳐진 파라솔을 가만히 돌려 접는다. 어디선가 홀연히 나타난 길고양이 한 마리가 느린 걸음으로 카페를 가로질러 간다. 나른한 오후, 카페 덕후 둘이는 커피를 사이에 놓고 말이 없다. 아마도 이들은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플로리안에서 보았던 나폴레옹의 흔적을 기억하고, 또 카페 레지오 노천 테이블에서 커피를 옆에 두고 영화 The Godfather의 대본을 읽고 있던 알파치노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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