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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대역 불빛정원에서 추억을 소환하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성이라면군 복무를 위해 2년 간 국가에 헌신하는 기간을 갖는다. 그들 중 대다수는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고 전방 각지의 부대로 배치된다. 논산에서 각 부대로 이동하기 위해 군 수송 열차를 이용하는데, 10년 전에는 파주나 연천, 철원 등 서부지역으로 가는 신병들은 모두 화랑대역에서 하차를 했다. 필자 또한 글을 작성하는 지금으로부터 10년 4개월 하고도 2주 전, 군복을 입고 이 화랑대역 플랫폼에 첫 발을 딛었다.

2010년 12월, 옛 경춘선 철길의 복선화 및 이설로 인해, 한 달에 한 두 번은 군인들의 딱딱한 군홧발 소리만 가득했던 화랑대역은 폐역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폐역으로 방치되었던 화랑대역은 2017년 경춘선 숲길 조성 사업 시작과 함께 불빛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새 단장을 하게 된다.

화랑대역 불빛정원은 육군사관학교 정문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4번출구에서 나와, 사거리를 하나 지나 조금 걸어가면 도달할 수 있다. 서울 시계 내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낮에는 인근 주민이 아니면 이곳에 방문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은 편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밖에 나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적이 드물고 조용한 곳에서 바깥 공기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기를 희망하는 분들이라면 화랑대역 불빛 정원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화랑대역 역사는 필자가 처음 군 수송 열차에서 내리던 그 때와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매표소와 벤치 몇 개만 존재하던 역사 내부는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이라는 상징성 때문인지 문화재로 등록되어 화랑대역의 역사 전시관 역할도 겸하고 있었다.


역사 내부 한 켠에는 옛 대학생들의 봄 MT를 책임졌던 열차 내부가 재현되어 있다. 지금은 대성리나 가평 등지로 가는 전철을 이용하여 이동하지만, 필자의 대학 새내기 시절만 해도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완행 열차를 이용해야 했다. 역사 내부에 재현된 기차 내부를 보니 그 때 같이 놀러갔던 동기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필자보다 연배가 있으신 분들이라면, 필자와 마찬가지로 놀러가는 기차에서의 즐거웠던 청춘 시절 추억을 회상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역사 외부로 나오니 필자에게는 칙칙하게만 기억되던 그 플랫폼이 맞는지 의아할 정도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일몰 후에 정원 전체의 불을 밝히기 위해 이곳저곳에 전구를 설치한 것도 눈에 띈다. 무궁화 호를 비롯하여 체코와 일본에서 기증받은 노면 전차도 전시되어 있어 해외 여행 온 듯한 분위기의 사진 촬영도 가능하다. 아쉽게도 공공 도서관처럼 운영되는 체코 노면 전차를 제외한 두 열차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상태다.


잡지 화보에서나 볼 수 있는 철길에서 자신의 사진을 남기고 싶은 분들 역시 화랑대역 불빛 공원 방문은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최근 국내에서는 철길 자체 진입을 할 수 없게 만들어 놓은 곳이 대부분이기도 하고, 설령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있다 해도 법적인 처벌 위험 때문에 철길 위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매우 어려워졌다. 하지만 경춘선 숲길 조성 사업 덕분에 화랑대역에서 춘천 방면으로 2km가 조금 넘는 철로가 폐선 당시의 원형 그대로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이 길을 따라 산책이나 사진을 촬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화랑대역 불빛정원의 진정한 화려함은 일몰 후부터 나타난다. 역사 내에 설치되어 있던 형형색색의 전구들이 어두워진 공간을 화려하게 수놓는다. 화랑대역은 플랫폼이 위치한 부지 외에도 플랫폼 외부, 무궁화호 열차 뒤로도 정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메인 공간이 다채로운 색으로 구성된 것과 달리 푸른 색으로만 공간을 수놓고 있다. 방문객이 산책할 수 있는 작은 숲길이 나있기 때문에 여름의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한 여름 밤의 사색에 잠기기에도 좋다.


군인의 신분으로 처음 마주했던 화랑대역은 긴장감 있는 적막만이 감돌던 곳이었다. 하지만 10년 후, 민간인 신분으로 조금 더 여유로워진 마음을 갖고 화랑대역을 바라보니,서울 내의 모든 역들이 불빛 정원을 조성한다고 해도 이 역만큼 주변 공간의 분위기를 사계절과 어우러져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는 역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간이역으로서 50년의 세월동안 수많은 청춘의 애환을 직접 지켜보며 같은 자리에 있어 왔기에 화랑대역이 자신의 공간을 더 원숙하게 표현하게 될 수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사색의 시간, 멋진 독사진, 옛날의 추억. 자신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화랑대역 불빛정원을 방문해 얻어보는 것은 어떨까? 분명 화랑대역 불빛정원은 여러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멋지게 포장해서 돌려줄 것이니 말이다.

Pavel Lim, Reporter From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