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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칼럼니스트 Clint Jung 과 함께 읽는 1월의 책


《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저, 한겨레 출판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로 전환된 뒤 제일 큰 변화는 차량을 통한 출퇴근 시간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낭비되는 시간이 없어졌다고 좋아했는데, 점점 업무시간이 늘어나 버렸고 출퇴근 시 버스나 지하철 안에서 활용되던 독서 시간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방 안에 종일 박혀 업무를 마치고 나와서 저녁인지 야참인지 모를 식사를 끝내면 바로 녹초. 그 상태로는 쉬이 책이 잡히지 않았다. 식사 후 소파에 앉아 습관처럼 틀게 되는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도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 올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윌라' 월정액제 무제한 오디오북 앱을[1] 접하게 되었다. 초기엔 한두 시간에 끝낼 수 있는 에세이나 두세 시간 분량 소설을 열 몇 시간씩 감정을 담아 천천히 읽어주는 속도에 적응이 쉽진 않았다. 하지만 몇 주의 적응 기간이 지나자 일인 다역을 멋들어지게 하는 성우들의 연기에 매혹되었고, ‘고릿적 라디오 드라마가 TV 시대에도 왜 인기가 있었던 건가’에 대한 답을 찾은 듯 오디오 북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만나게 된 소설 중에서 강태식의 <굿바이 동물원>을 추천해 보고자 한다.


글: Clint Jung, Book Columnist


사는 게 참 그렇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왜 사는지, 나는 과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할 이런 문제들을 등한시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225 p


중소기업을 다니던 김영수 과장은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정리해고된 뒤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 동네의 부업 브로커 돼지 엄마가 소개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그 일들은 대략 마늘 까기, 인형 눈 붙이기, 종이학 접기….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리고, 인형 눈을 본드로 붙이다가 본드 중독과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환각과 무력감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다른 일거리를 알아보던 중, 취직되면 잘릴 일이 없다는 공무원직 같은 세렝게티 동물원 일자리를 소개받아 취직한다. 세렝게티에서 마운틴 고릴라 담당을 맡게 되는데, 고릴라들을 관리하는 직책인 줄 알았으나 실상은 고릴라 탈을 쓰고 실제 고릴라처럼 생활하는 일이었다. 세렝게티에 있는 동물들은 모두 인간들이 동물의 탈을 쓰고 동물 흉내를 내지만 관람객들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영수는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 관객들이 던져주는 바나나를 까먹고 12m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철제 구조물에 기어 올라 가슴을 두들기며 포효하는 고릴라 업무에 익숙해져 간다.


간밤에 많이 생각했다. 눈을 감고 있으면 낮에 봤던 고릴라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먹고산다는 게 뭘까? 인생에 대한 회의가 밀려와 아내 몰래 몸부림치기도 했다. 고릴라가 아니면 먹고살 수 없는 걸까? 떼굴떼굴 밑바닥까지 굴러떨어진 느낌이었다. 내일 나가지 말까?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고릴라면 어때, 돈만 잘 벌면 되지,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내가 차라리 마늘을 깐다, 넌 자존심도 없냐, 너덜너덜 걸레가 될 때까지 자존심을 괴롭히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도 하는 건데 뭘, 상처에 연고를 바르듯 이렇게 자기를 합리화해보기도 했다.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눈만 감고 있었다. 한두 시간이나 잤을까? 몸도 마음도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런 몸과 마음을 질질 끌고 출근길에 올랐다. – 106 p


그러던 어느 날, 세렝게티의 직원이었다던 한 여행사 영업사원이 찾아와서 여행 상품을 팔기 시작한다. 추천상품 중 하나가 아프리카로 떠나 진짜 동물들과 사는 것이었는데, 말 같지도 않던 그 말에 마운틴 고릴라 중 대장이었던 만딩고가 넘어간다. 남파간첩이었으나 북측으로부터 버려졌던 만딩고는, 평생 쫓기는 현실과 돈 문제로부터 벗어나고자 아프리카 이주를 결정한 것이다. 만딩고는 아프리카에서 동물들과 어울려 생활하면서 핸드폰 약정이 끊길 때까지 세렝게티 동료들에게 매일 통화하였는데 월세, 전세, 관리비, 세금 등의 돈 걱정 없는 아프리카의 삶이 만족스럽다는 찬사를 늘어놓는다. 생활고로 힘들어하던 동료들은 그의 말에 공감해서 한국 생활을 접고 아프리카로 한두 명씩 떠나는데, 급기야 세렝게티 동물 직원들이 대폭 줄어드는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 동네 마트에서 캐셔 일을 하던 영수의 아내는 부업을 소개받아 마늘 까기, 인형 눈 붙이기 등을 하기 시작한다.


“마늘이 맵네.” 아내는 거짓말을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나는 안다. 매운 건 마늘이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것도 마늘 때문이 아니다. 사는 게 맵다. 매우니까 눈물이 난다. 한때는 나도 마늘을 까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 안다. 마늘보다 사는 게 백 배쯤 맵다는 걸.

-159 p


블랙 코미디 소설<굿바이 동물원>의 웃픈 현실 풍자들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직장에서 해고 통보를 받던 날 남들의 눈을 피해 울고 싶던 영수가 화장실을 찾는다. 하지만 화장실에 비어 있는 칸이 없었다. 구조조정을 당한 동료 가장들이 선점해선 울고 있었던 것이다. 울고 싶은데 울 곳이 없었다. 머리로는 작위적이라 생각하는데 마음으로는 작위적이지 않게 느껴진다. 울기 위해서 화장실을 찾는 것도 경쟁이었고 영수는 우는 것마저 경쟁에서 밀렸다. 본드를 흡입하며 여러 가지 환각 현상을 보던 날들 또한 그렇다. 환각 세계에 존재하는 대상들과 언행들은 과하게 디테일해서 지루하고 비루해 보이기도 했으나, 나중에 영수의 아내도 인형 눈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말했을 때 그 감상은 반전된다. 영수가 경험했던 환각이 플래시 백 되고, 그녀가 갖게 될 상실, 무력, 절망에 대한 예상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세렝게티에 취직하기 위해 30대 중반 나이에 다시 체력장 준비로 사력을 다하던 과정이나, 같이 해고되었던 동료가 달리는 차에 뛰어들어 보험 사기를 치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장면도 웃기는데 웃지 못했고, 절실해 보였기에 애잔했다.

강태식 작가 인스타그램

그럼에도 이 소설은 해피엔딩이다. 소설 속 영수 부부의 현실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나아질 것도 없어 보이지만, 매일매일 꿋꿋이 살아간다. 서로 사랑하고 응원하며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읽다 보니 코맥 맥카시(Cormac McCarthy)의 《더 로드 The Road》에서 느꼈던 디스토피아 시대의 여정과 마지막 희망이 매한가지 메시지로 떠올려졌다. 여기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암울하고 절망에 가까운 삶에도 희망이 살아있다. 나아갈 수 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근 몇십 년 사이, 최악의 해였던 2020년을 보낸 우리의 현재를 생각해 본다. 낮은 신뢰도의 급 제조된 백신과[2] 심사 기간이 대폭 줄어든 치료제가[3] 2021년을 예전 생활로 완전히 돌려줄 수 있을지 불안감이 팽배하다. 예전 생활로 돌아가도 겪고 있는 경제적 사회적 고통이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을 것도 안다. 팬데믹으로 인해 가속화된 인공지능, 머신 러닝, 로봇 등의 4차산업 투자가 일자리 면에서는 어두운 미래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서로 포기하지 않고 오늘을 살 수 있다면. 지금 당장은 고릴라 흉내를 내며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를 하루하루를 살아도,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소망으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그래서, 우리에게 다가올 내일도 해피엔딩이라 믿는다.


강태식 작가


1972년생으로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12년 《굿바이 동물원》으로 제17회 한겨레 문학상을, 2018년 《리의 별》로 제4회 황산벌 청년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두 얼굴의 사나이》,《한밤의 산행》 등이 있다.


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

[1] 윌라 https://www.welaaa.com/
"오디오북 유료 구독자 800%↑…월평균 7.4권 들었다" –이투데이. 2020년 12월 4일
[2] ‘코로나19 백신, 과학 넘으니 ‘신뢰’의 벽이’– 한겨레 21 – 제 1341호 2020년 12월 7일.
[3] ‘백신·치료제 도입 빨라진다… 허가심사 40일로 단축’-디지털타임스 2020년 12월 7일
[4] ‘4차 산업혁명…일자리 500만 개 사라진다’ - ZDNet Korea - 2016년 7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