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oon Choi, Jazz Musician

5월에 듣는 '이태리 정원'

90년대 후반, 학교 졸업을 앞두고 영화음악 의뢰를 받아 한국에서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안성기, 김혜수 주연의 “남자는 괴로워”라는 제목의 영화였는데, 이명세 감독의 아방가르드한 색채가 묻어나는 코믹한 영화였다. 몇 달간 음악 작업을 하면서 영화에 있어서 음악의 역할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 했었는데, 오늘 소개할 곡은 이미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 곡이지만, 몇 해 전 개봉해 인기를 모았던 영화 “박열”에 삽입되어 더욱 빛이 났던 ‘A Garden In Italy(이태리 정원)’라는 곡이다.

Courtesy of Yahoo Japan

이 곡은 클래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멜로디 라인이나 그리고 곡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가 클래식한 느낌을 풍기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이다. 나는 재즈를 전공하고 짧지 않은 음악 활동을 했었지만 사실 음악을 처음 접한 것은 클래식이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사다주신 전축과 클래식 음반을 들으며 음악이라는 세계에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지금도 클래식에 대한 애착이 무척 크다. 그래서 그런지 A Garden In Italy는 마치 오페라의 아름다운 아리아처럼 들을 때마다 알수 없는 감동에 빠지게 된다. 제목 마저도 5월에 썩 잘 어울린다.

Billy Cotton Band, Courtesy of YouTube

사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보다 좀 더 다양한 정보를 나누고 싶어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워낙 오래된 곡이다 보니 자료가 그닥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00년대 초창기에 유럽의 한 젊은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 노래가 유럽을 떠나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에까지 전달되어 번악곡으로 불려졌다는 점은 지금도 여전히 놀랍다. 더욱이 당시 한국은 일제 강점기를 지나고 있었는데 말이다.

Singer, Allan Breeze. Courtesy of Allanbreeze.com

이곡을 작곡한 사람은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령인 살레지오에서 태어난 유태인 랄프 에르윈(Ralph Erwin)으로, 이 곡이 처음 레코딩 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33년 런던에서 활동하던 빌리 카튼(William Edward Cotton) 밴드에 의해 연주되었으며, 당시 밴드에서 싱어로 활동했던 앨런 브리즈(Alan Breeze)의 노래로 큰 인기를 얻게 되었다고 한다. 빌리 카튼은 1950~1960년대 영국의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에서 활동하던 엔터에이너로 1920년대부터 음악 활동을 해 온 뮤지션이었고, A Garden In Italy를 불러 유명세를 떨쳤던 앨런 브리즈는 빌리 카튼 밴드에서 40년 가까이를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인물이다.

‘이태리 정원’이라는 제목으로 번안된 이 노래는 1930년대 동양의 이사도라 던컨이라 불렸던 무용가 최승희에 의해 레코딩 된 SP(Short Play)가 현재 남아있고, ‘박열’ 영화에도 앨런 브리즈의 원곡이 아닌 최승희씨의 노래로 소개되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 때문인지, 아니면 무희의 가냘프고 섬세한 목소리 탓이지 원곡 보다 훨씬 더 애잔함을 느낄 수 있지만, 왠지 나는 앨런 브리즈의 목소리가 더 마음에 든다. 스페인 탱고보다는 다소 낭만적인 이태리 탱고리듬에 아름다운 바이올린 선율, 곡 후반부를 가득 채우는 뮤트를 사용한 트럼팻 멜로디, 그리고 애런 브리즈의 맑고 부드러운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꽃과 나무로 어우러진 5월의 이태리 정원으로 이끄는 듯 하다.


글: 최준성, 재즈 뮤지션

자료 출처: Wikipedia, Allanbreeze.com, BBC Rad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