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북 칼럼니스트
7월의 책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Barbel Wardetzky 저

변화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놓아주기’ 즉 무언가를 버리는 일이다. 인생에서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여 놓아주라는 뜻이다 – 88p
놓아준다는 것은 일회성 행위가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일을 잠시 멈추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시정지’다. 무언가 억지로 할 때 매번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로는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가끔은 일이 스스로 흘러가게 하자 – 139p
글, Clint Jung, Book Columnist
주인공 직업이 유품정리사인 드라마<무브 투 헤븐>에 심취해 있는 아내는 어느날 서재에 들어오더니 방안에 채워져 있는 모든 게 다 짐이라며 미니멀리스트와 같은 말을 했다. 집 청소를 하며 기부할 것들은 기부하고 버릴 것들은 버리며 정리해가자고 한다. 패스트 패션 스토어에서 구입한 옷가지들이나 오래된 물품들이야 그렇다 치지만, 테이프, 시디, LP, DVD 같은 미디어들, 손 떼 묻은 책들과 물건들의 정리는 언제나 작은 다툼을 일으킨다. 요즘같이 스트리밍과 이북 서비스가 발달한 세상에선 굳이 소유 가치가 없다고 하는 주장을 들을 때면 애장품들 속에서 받는 안정과 만족을 쉽게 포기 못 하는 나로선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죽을 때 다 싸 들고 갈꺼야? 하고 물으면 달리 할 말은 없다. 그렇게 따지면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물론, 미니멀리즘 예찬자들의 주장처럼 몸집을 줄이면, 시간과 공간을 절약해서 가치 있는 곳에 쓰면 그런 면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겠다. 그럼에도, 무언가를 잡고 있는 것을 놓기란 쉽지 않다. 설령 놓아야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는 진실을 알고 있어도. 분리 불안장애를 초래할 것 같다. 이것은 변화를 맞이하거나 죽음에 대해 미리 준비하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다.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란 관점이라고 말해야 할까.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 심리 상담가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최신간을 만났다. 제목만 보아선 곤도 마리에의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류의 소유를 줄임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을 다룬 미니멀리즘 찬가로 오인할 수도 있겠지만, 살면서 부딪치는 격변의 상황에 대해 무기력해지거나, 상처받고 불안해하는 감정을 다루는 심리 치료책이다. 자존감, 자신감을 갖고 긍정적 사고로 부정적 영향을 중화시키는 회복 탄력성을 키우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가 주요 메시지이다. 내용을 더 간단하게 함축하면, 책의 마지막 챕터의 한 문단 소제목 중 하나로 귀결할 수 있겠다. 바꾸거나, 내버려 두거나, 사랑하라. 우리는 언제나 인정을 받고 위로를 받고 싶어 한다. 감정과 기억을 건드려보면, 누구나 한 가지 이상의 상처나 아픔을 갖고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래서 단순하거나 평범한 말임에도 위로를 받거나 치유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책을 읽으면서 위로받고 싶은 기대를 어느 정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간 베스트셀러로 오르락내리락 했었던 정신과 의사들의 에세이들과는 좀 달라서, 마치 수업용 텍스트북과 함께 읽어야 하는 심리 수업용 보조교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르게 보자면, 무슨 가슴 아픈 상담 사례를 열거하며 받았던 감정에 호소하거나 위로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상처받은 심리를 다스리는 방법을 두리뭉실하게 써 내려간 성공철학서 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러니까, 감동이나 위로는 전혀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래된 과거와 알 수 없는 미래 사이에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과거를 선택할 것이다. 그 과거가 설령 비참했을지라도” 과거를 선택하는 것은 기억 속에 머무름을 의미한다. 고통일지언정 ‘안락한 불행’을 선택하는 것이다. 미래를 비관적으로만 바라본다면 앞으로도 불행은 피할 수 없다. 해답은 바로 ‘현재’에 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72p
어디에 있든지 우리는 ‘자신’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당신의 존재를 정의하기 때문이다. 수많은 문제의 원인은 결국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그리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이럴 때는 문제에 대응하고 이를 다룰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변화를 갈구하는 마음은 인생을 다시 설계하도록 자극하는 긍정적 계기가 되기도 된다. -63p
그럼에도 독서 중 붙인 북마크 탭은 평균을 훌쩍 넘게 초과해서 차라리 몇 번을 더 읽어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탭을 붙여가다가 이 책의 방향성을 잘못 이해했음을 깨달았다. 배르벨은 심리 수업을 진행했고 난 청강생이었다. 난 이 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거나 성장의 발판이 되는 도움을 청했지만, 수업은 드라마같이 않고 현실적이었다. 인생에서 버려야 할 것은 아팠거나 오히려 화려했다고 믿는 과거이고 붙잡아야 할 것은 지금의 현재이다. 그 현재를 잡기 위해 스스로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내외부에서 함께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데, 방관자로 가만히 선 것 마냥 문자들을 훑으며 떠먹여 주기만을 기대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나는 과정을 지나쳐 결과만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버려야 할 것 남겨야 할 것>을 읽을 땐 로컬버스를 탄 것처럼 모든 정거장에 들러 주변을 돌아보고 쉬었다가 출발했으면 좋겠다. 익스프레스 마냥 한 번에 쉬지 않고 읽어 목적지에 도착해 버리면 지나쳐버린 풍경들에 계속 뒤돌아보게 된다. 종착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거쳐 가는 것들을 하나하나 담아보며 반문하고 대답해 나가면 좋은 수업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곱씹어 볼 내용이 많아 두고두고 다시 읽어보아야 할, 책 제목처럼 남겨야 할 책이다.
독일어로 카이로스(Kairos)는 유리한 순간, 결정적인 찰나, 특별한 기회를 뜻한다. 카이로스는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때가 무르익으면 찾아온다. 풀을 잡아당긴다고 더 빨리 자라는 게 아니듯 유리한 순간은 억지로 꾸밀 수 없다… 카이로스는 발달과정 중에 생기는 사고력, 직관, 인내를 바탕으로 성숙해진다. -223p
아무리 작더라도 긍정적인 존재를 인지하면 삶에 대한 용기와 자신이 가진 힘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면 자아 수용력이 흔들리고 누군가의 약점이나 과실을 포용하는 인간성 역시 상실해버리고 만다. – 272p
베르벨 바르데츠키(Barbel Wardetzky) 저

밀리언셀러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따귀 맞은 영혼』의 저자. 심리학자이자 심리치료사로서 36년간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각종 심리 장애와 중독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치료해왔다. 1981년 심리학 디플로마 취득 후 미국으로 건너가 게슈탈트 심리치료를 공부했고, 독일로 돌아온 뒤에는 9년간 그뢰넨바흐 심인성 질환 전문병원에서 근무했다. 현재 뮌헨에서 심리상담소를 운영하며, 슈퍼바이저, 코칭 지도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심리치료 권위자로서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세계 곳곳에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요즘에는 우울증, 번아웃 같은 정신적 질병을 낳고 왕따나 생산성 저하, 집단 무기력 및 과격주의로까지 번지는 조직과 사회의 나르시시즘에 대한 연구와 집필에 몰두하고 있다. 최근작 : <따귀 맞은 영혼>,<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
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