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ng Choi Editor
70년 삶을 기록하다, 가을을 닮은 사람 Sue Kim Ramos
이 지구상에는 인구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얼핏 보아 그들은 서로 비슷한 듯하지만 결코 비슷할 수 없는 삶의 여정을 걷고 있다. 마치 나무가 서로 다른 나이테를 지녔듯이 사람들은 서로 다른 흔적을 남기며 더불어 그리고 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그녀를 Mrs. Kim이라고 불렀고, 또 몇몇은 Mrs. Ramos라 불렀지만 스스로는 Sue라는 이름으로 불리길 좋아하는 한 사람이 있다. 올해 70을 갓 넘긴 그녀는 이따금씩 자신이 살아온 70년 여정을 뒤돌아보며 소스라치게 놀란다고 한다. 하루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날이 없었고, 하루도 외롭지 않았던 날이 없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굳건히 잘 살아 낸 자신이 대견스러워 눈물이 난다고도 한다. 그리고 그 어지러웠던 삶을 한 권의 책으로 차분히 정리해냈다. 이민 생활 40년, 이방 도시 맨해튼의 다운타운과 업타운을 오가며 깊은 나이테를 그려온 이방 인생 40년의 삶을 연둣빛 한 권의 책 속에 남겼다.

인터뷰 약속을 하고 날짜를 기다리던 중 Sue Kim 씨는 몸이 좋지 않아 며칠 누워지낸다는 연락을 해왔다. 혹시나 싶어 코로나19 테스트를 하고 음성 판결을 받았지만 내가 방문할 것이 깨름칙하다며 미리 알려온 것이다. 마스크로 무장을 하고 약속대로 짧은 만남을 가졌다. 유별스럽다면 충분히 그럴만한 그녀의 삶은 이미 책 속에 온전히 소개되어 있기에 그 삶이 달리 궁금하지는 않았다. 내가 궁금했던 것은 삶이 유별나다 하여 누구나 책을 쓰는 것은 아니기에 작가도 아니고 글재주가 뛰어난 사람도 아닌 그녀가 왜 책을 쓸 생각을 했는지가 몹시 궁금했다. 그녀의 대답은 단호하고 분명했다. “나는 세상 사람 누구나 알만한 유명인사도 아니고 또 이런 기록을 통해 대대로 기념할 만큼 특별한 삶은 산 사람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 그 누구도 나와 똑같은 인생을 산 사람은 없기에, 나는 나로 충분히 특별하고 내 인생 이야기 또한 세상 유일무이한 사연이기에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수 있었다”.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왔지만 여건이 허락치 않아 제대로 학교를 마치지 못했고 불구의 자식을 결혼시키고 싶어 자신에게 접근한 한 여자의 꼬임에 빠져 잘못된 결혼을 하게 되었으며, 부모도 포기한 불쌍한 남편을 외면할 수 없어 그와 함께 40년을 살았고 그의 장례를 치르고 삶을 정리하는 책을 쓰며 비로소 홀가분해졌다는, 그야말로 40년 전 그 시대에 제법 어울릴만한 드라마 시놉시스 같은 그녀의 스토리가 적잖이 진부했지만, 그러나 그녀의 표현처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한 인간의 숙연한 삶이기에 그 책의 무게가 드라마의 소재처럼 가볍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짧은 에세이를 모은 3부 ‘해가 지면 별이 뜹니다’에는 잔잔한 감동을 불러오는 70살 노년의 깊은 내면이 담겨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참으로 평온해지기도 했다. 특히 소박한 세간과 밥상으로 스스로에게는 호되게 검소하지만 평생 남을 돕는 즐거움으로 산 사람이라는 대목에서는 여느 드라마 못지않은 반전에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그녀가 대단히 유명세를 떨치는 사람은 아니지만 책 속에 담긴 그녀의 내면에는 그 어떤 유명인보다 더 깊이 있고 단단한 삶의 지혜와 지신만의 철학이 오롯이 녹아있었다.
삶이 내게 어떤 모양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삶을 온전히 내 삶으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잘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살다 더러 힘든 순간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적잖은 위로를 줄 ‘다운타운 업타운 40년’, 그 책 속에서 발췌한 두 편의 에세이를 함께 게재하며 마치 깊어가는 가을처럼 두툼한 삶의 향기를 지닌 Sue Kim 씨와의 대화를 마름한다.
값비싼 개와 길 잃은 고양이

어려서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는 병약한 아이였다. 늘 아버지의 등에 매달려 하루하루 연명했던 여린 풀포기보다도 더 야윈 아이였다. 그러니 지금까지 살아온 70여 년의 삶은 그저 덤으로 얻은 것이라 해도 억울할 일이 아니다. 그 병약했던 아이는 반쯤 죽은 목숨으로 이 세상에 왔다가 칠십이 넘도록 이리 무탈하게 살고 있으니 그동안 내 곁에 쌓인 것들을 남에게 좀 나눠준다고 해서 크게 밑질 일은 아니다.
생전에 개를 좋아하던 남편 탓에 사는 동안 줄곧 애완견을 키우며 살았다. 남편 임종 때까지 함께 살았던 개는 몰티즈라는 종으로 넉넉지 못한 형편에 큰돈을 주고 사 온 녀석이다. 그런데 어느 날 길 잃은 고양이 한 마리가 집 근처에서 울고 있길래 집으로 데려와 그 개와 함께 키웠다. 처음엔 날이면 날마다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더니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자 둘은 의좋은 남매처럼 잘 지냈다.
최근 혼자된 가까운 친구가 자기도 애완동물을 키우고 싶다며 둘 중 한 녀석을 달라길래 어떤 녀석을 줄까 고민하다가 개를 내어주었다. 우선 보아도 남편의 흔적이 묻어 있기도 했고 또 없는 형편 아껴 모은 돈으로 산 개라 누가 들으면 나를 좀 어리석다 여길 수 있겠으나 나는 왠지 고양이를 내어주기가 저어되었다. 고양이는 길에서 주워온 놈이다. 한 번 버림받은 생명을 내가 또다시 내치기가 어려워 그 녀석은 내가 데리고 살고 대신 돈 주고 사 온 놈을 친구에게 주었다. 그렇게 친구를 따라갔던 개는 이후 8년을 친구와 더불어 잘 살다가 세상을 떠났고, 그림자처럼 내 곁을 따르던 고양이도 지난해 식음을 전폐하기에 병원으로 데려가던 중 차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흔히 인생을 공수래공수거라고 한다. 그렇다고 내가 가진 것 몽땅 다 남에게 줘버리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비록 내게 귀한 것이라 하더라도 내게 그것을 얻어간 이가 그로 인해 삶이 행복하고 기쁠 수 있다면 내 것을 내어주고 베푸는 것이 그다지 아깝지 않다는 뜻이다. 세상 떠나는 날 비록 내 손은 비어있을지라도 삶 굽이굽이 마다 또렷한 기억들은 내 마음속에 가득 담아 갈 수 있다. 그중에서도 나로 인해 행복해하던 이의 환한 얼굴과 그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기뻐했던 내 모습이 가장 빛나는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인생에서 남기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에게 안부가 궁금한 사람이 되고 싶다.

평생에 자손 없이 살았고 남편하고도 서로 데면데면했던 내가 이제 혼자 되었다 하여 특별히 달라진 것을 별로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아내로서 남편을 적잖이 염려하며 살았고 그도 내게 말해준 적은 없지만, 지아비로서의 책임은 늘 품고 살았다고 믿는다. 서로 살갑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남들과 조금 다른 모양의 애정으로 반평생을 공유했다. 이렇게 혼자가 되고 보니 생전에 고맙다는 말 한 번 하지 못한 것이 참 아쉽고 미안하다.
멀리 떠난 사람들은 가끔 안부가 궁금하다. 젊은 시절 벗하여 잘 지냈던 친구가 그렇고, 이웃하여 지냈는데 지금은 떠나고 없는 사람들이 그렇다. 또 인생에 몇몇 스승 같은 분들이 그렇고 평생을 함께 삶을 나눴던 남편이 그렇다. 이렇게 그들을 떠나보내고 혼자 남아 생각해보니 그들이 곁에 있을 때 더 많이 고마워하고 사랑했어야 옳았다. 더러 밉고 원망스럽더라도 애정을 쏟고 마음을 나누는 일에 인색하면 훗날 이렇게 후회만 남게 된다. 그래도 퍽 다행인 것은 나쁜 기억보다는 따듯한 기억들이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풀포기처럼 연약하다. 뙤약볕 한 자락에도 메말라 쓰러지는 그런 존재들이다. 타인을 향해서는 모두가 눈썹을 치켜세우고 강한 척하지만 혼자 있는 인간은 누구나 외롭고 고독한 법이다. 미워하기보다는 그 연약함을 먼저 헤아리며 더 많이 애정을 표현하고 안아주어야 한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생긴 모양 그대로 서로를 보듬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이 아닐까 싶다. 내 남은 날 동안은 베풂과 나눔과 사람을 더 많이 실천하며 내가 떠나고 없는 훗날 나도 누군가에게 안부가 궁금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인터뷰, 정리 Young Choi, Edi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