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칼럼니스트 Clint Jung
9월의 책, 천 개의 찬란한 태양- Khaled Hosseini
마리암은 소파에 누워 무릎 사이에 손을 넣고 눈발이 날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나나는 눈송이 하나하나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여자의 한숨이라고 했었다. 그 모든 한숨이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어 작은 눈송이로 나뉘어 아래에 있는 사람들 위로 소리 없이 내리는 거라고 했었다. -125p

By Clint Jung, Book Columnist
어머니 나나와 함께 줄곧 마을에서 떨어진 오두막에서 살던 사생아 마리암. 열다섯 번째 생일날 세 명의 부인을 둔 친아버지 잘릴의 집을 찾아간다. 밤 새 집 앞에서 문을 열어주길 기다렸으나 자신의 체면과 평판 때문에 그녀를 집으로 들여보내지 않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진실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다음 날 아침 실의에 차 집으로 돌아갔더니 간밤에 어머니 나나가 자살한 것을 목격한다. 졸지에 혼자가 되어 잠시 아버지와 며칠을 살게 된 마리암은 아버지의 세 부인에 의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되고 카불로 떠나게 된다. 남편은 전처와 아들을 잃은 기억이 있는 마흔다섯의 구두 수선공 라시드. 사랑이 없던 결혼에도 마리암은 꿋꿋이 살아가려 하지만 유산을 여러 번 하게 되고 그 뒤로는 남편의 무시와 폭행 속에 노예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소설의 또 하나의 주인공 열네 살의 라일라. 지뢰에 다리 한쪽을 잃어버려 의족을 쓰는 동네 친구 타리크를 사랑하고 임신을 하게 된다. 타리크는 전쟁을 피해 가족과 함께 파키스탄으로 이주하게 되며 그녀와 같이 가자고 말했으나 가족을 버릴 수 없었던 라일라는 따라가지 않는다. 몇 주 뒤 라일라 가족 또한 파키스탄으로 떠나려 했으나 집으로 날아온 로켓탄에 의해 온 가족을 잃어버리고 만다. 더군다나 타리크마저 죽었다는 연락을 받고 절망에 빠진 그녀에게 마리암의 남편 라시드는 그의 후처가 되라고 한다.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된 라일라는 그 사실을 숨기고 서둘러 결혼을 하지만 마리암과 계속 부딪치게 된다. 그러다 태어난 딸 아지자를 통해 앙금을 풀고, 둘의 관계는 친구와 같은 사이로 발전된다. 일 년 뒤 가정폭력을 피해 둘은 딸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탈출을 감행했으나, 남성이 없는 여성의 여행을 금지한 이곳에서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기차를 타려다 경찰에게 붙들려 남편에게 돌려보내졌고 더 심해진 폭언과 폭행 속에 계속 살아가게 된다. 아들을 낳았지만, 전쟁은 심화되고, 남편은 직업을 잃고,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죽었다고 믿었던 타리크가 라일라를 찾아온다. 딸이 사생아라고 의심했던 라시드는 라일라를 폭행하며 죽이려 하자 마리암은 그녀를 지키려고 라시드를 살해하게 된다.
권력은 이제 민중과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영광스러운 새 시대가 열렸습니다. 새로운 아프가니스탄이 태어났습니다. 아프간 민중 여러분, 여러분은 두려워할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새로운 정권은 이슬람적이고 민주적인 원칙들을 최대한 존중할 것입니다. 지금은 기뻐하고 환호할 때입니다."-138쪽
모든 제국의 무덤이었던 아프가니스탄은 미군들이 철수하기로 결정한 지 3개월 만에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 20년을 끌어오던 오랜 내전은 셀 수 없이 벌어지는 여성 탄압과 수백만 난민들의 엑소더스로 마무리되어가고 있다. 그 나라가 처한 상황이 슬프고 안타까움에도 우리에겐 먼 이야기처럼 들려온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지리적 연관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탓도 있고, 제3세계 국가들을 향한 무관심과 동북아시아와 유럽, 미국에만 편중되어 온 학교 교육 때문일 수 있다.

우리가 실제로 접해온 해외 문학은 일본과 중국 그리고 영미문학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알랭 드 보통 이후 프랑스 문학이 인기를 끌었고, 장르 소설의 인기에 힘입어 북유럽 문학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그 외 지역들의 작품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슬람 국가들의 문학은 더더욱 접하기 어렵다. 이것은 문학뿐만이 아닌 영화와 음악 등, 문화 전반에 걸쳐 있는 현실이다. 중세 십자군 전쟁 당시부터 시작된 기독교와 이슬람의 갈등은 조작된 반이슬람 선전과 편견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수 세기 동안 만들어진 선입견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미국인 과반수가 이슬람 세계에 존경할만한 것이 거의 없거나 전혀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1]미국에 살기도 하거니와 친미주의자가 대부분인 우리로서는 암묵적으로 이슬람을 문화적 대척점으로 삼거나 터부시해왔던 것 같다. 9.11 테러를 경험한 후로는 보이지 않는 벽을 더 쌓아 올렸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이슬람의 나라인 아프간을 배경으로 한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소개하기로 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비록 그가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가임에도 모국을 배경으로 한 훌륭한 작품들을 꾸준히 써왔다. 강대국에 둘러싸인 채 부정부패가 만연한 나라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렵지 않게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 우리 역시 외세에 끊임없이 침입받던 고려와 조선 시대,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한국 전쟁과 휴전에 이어 제대로 된 민주주의의 기틀을 잡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시행착오를 거쳤지 않은가.
뭐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말이야? 소련군은 백만 명을 죽였다. 너는 무자히딘이 지난 3년 동안 카불에서만 몇 명을 죽였는지 알고 있니? 오십만 명이야… 그와 비교해, 도둑 몇 명의 손을 잘라내는 것이 그렇게 지나친 거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다. 코란에 그렇게 쓰여 있어. – 382p
냉전 당시에 미소 양 진영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빈곤과 기아에 시달렸던 최빈국들은 의외로 많다. 그중 아시아에 포함된 여러 최빈국 중 하나인 아프간은 한반도의 약 세배의 국토를 가졌으나 인구는 사천만이다. 알렉산더와 징기스칸에, 1970년대에는 소련에 점령당했었고, 왕정과 공산주의, 민주주의로 교체되어오며 오랜 내전 속에 신음해 왔던 나라이다. 2007년에 있었던 샘물교회 피랍사건을 통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탈레반의 나라로 우리에게 지금껏 각인되어 있었다. 17세기 당시 페르시아의 유명 시인 사에브에 타브리지가 ‘천 개의 찬란한 태양’으로[2]비유했던 수도 카불에서 온갖 차별을 견뎌온 두 여성의 기구한 삶과 희망을 찾아가는 모습은 우리의 할머니들과 어머니들의 모습과 닮았다. Freedom is not free. 워싱턴 D.C 한국 전쟁 기념관에 적혀 있는 글도 떠올랐다. 공짜가 아니지만 마치 공짜로 받은 것 같은 지금의 자유를 돌이켜 생각해 보게 했다. 또한 전쟁의 참상, 기아와 난민, 구출과 지원, 여성 인권 등을 노출시켜 우리들이 함께 품어야 할 문제로 인식하게 한 작품이었다.

사족이겠지만, 아프간이란 낯선 이름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1887년 첫 출간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 시리즈 <주홍색 연구>를 통해서였다. 화자를 담당한 존 왓슨이 아프간에서 부상을 당해 돌아온 군의관 출신이었다. 그다음은 1980년대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대명사, 람보 시리즈 중 3편이 아프간을 배경으로 했었다. 모두 서방의 눈을 통해 그들의 세상을 비춘 것뿐이었다. 먼 시간을 돌아서 <천개의 찬란한 태양>를 만났다. 아프간을 이해하겠다는 목적으로 내 소설을 일부러 읽지는 말아 달라고 할레드 호세이니가 최근 인터뷰에서 밝혔듯이[3], 소설 책 한 권으로 그 나라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다만 타 문화권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딛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첫걸음이 항상 어려우니.

[1] 지혜의 집, 이슬람은 어떻게 유럽 문명을 바꾸었는가. - 조너선 라이언스 저. 책과 함께 -37-38p 중에서
[2]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저– 259p
[3] https://www.joongang.co.kr/article/24131680 - "내 소설 읽지 말라" 아프간 출신 美베스트셀러 작가 호소. 중앙일보 8월 19일자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

1965년 카불에서 태어난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미국 작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아홉 살에 파리로 가, 1980년 미국으로 망명했다.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일하는 틈틈이 작품을 써서, 2003년 첫 장편소설 『연을 쫓는 아이 Kite Runner』를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했다. 이 책은 출간 후 101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으며, 영화화 되었다.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 남겨진 여성들의 삶을 다룬 두 번째 장편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A Thousand Splendid Suns』을 발표해 49주 동안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2013년, 아프가니스탄 남매와 가족의 사랑을 다룬 세 번째 장편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 And the mountains echoed』를 발표했다. 2006년 유엔난민기구의 친선대사로 임명되었고, 현재 NGO 활동과 더불어 할레드 호세이니 재단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에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