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ng Choi Editor

“A happy family is but an earlier heaven.” 박예진 양의 가족 이야기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가족이라는 가장 작은 단위의 사회와 만나게 된다. 혈육관계인 이 작은 사회는 세상 어느 집단보다 더 친밀하고 서로에 대한 보호 의식이 투철하며 무엇보다 무의식적인 사랑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운명 공동체다. 건강한 가족은 가족 구성원 개개인을 더 큰 사회로 나아가 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도록 돕는 토양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란 굳이 이런 사전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더라도 출생과 동시에 개인에게 부여되는 필연적인 선물이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환경적인 이유로 가족관계가 와해된 아이들의 경우 그들이 가족의 한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와 존엄은 어떻게 유지될 수 있을까? 그들을 위해 우리 각자가 고민해봐야 할 사회적 책임은 무엇일까?


가족과 가정의 개념을 제대로 접해보기도 전에 보육원이라는 사회기관에 들어가 살다가 12살 나이에 낯설은 미국에서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어 6년간의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짧지만 짧지 않은 삶을 살았던, 그리고 이제는 건강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진 멋진 여성으로 성장해 어엿한 대학생이 된 박예진 양의 이야기다.

동명 보육원 시절-오른쪽

예진이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모르겠어요”라는 한숨 섞인 말로 말문을 열었다. 부모님과 살았던 시간에 대한 기억이 없다는 것, 부모님의 이혼으로 친권을 갖고 계시던 아빠와 함께 살다가 살 무렵 보육원에 입소했다는 것이 예진이가 가진 가족에 대한 기억이다. 불행 다행으로 예진이는 친오빠와 함께 보육원으로 입소했다고 한다. 정확히 설명할 수는 없어도 아마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었을 거라고 아이는 회상한다.


“보육원에서 저는 무척 순종적인 아이였어요. 규정을 잘 지키고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어요. 보육원은 저와 같은 아이들을 후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다 보니 그들과의 관계 유지가 중요하거든요. 후원자의 눈에 잘 보여야 하니까 무슨 일에든 싫다는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어요. 뭔가 도움을 받는 처지라는 생각이 어릴 때부터 형성되어 있다 보니 자기주장도 없고 늘 소심했던 것 같아요. 어른들이 보시기에는 얌전하고 착한 아이였다고도 할 수 있고요”

초등학교 시절 예진양

매일 짜여진 스케쥴에 따라 명의 원생으로서 비교적 모범적이었던 예진이는 당시 동명 보육원으로 봉사활동을 오던 미국의 YANA Ministry의 위탁가정(Post Parenting )프로그램의 수혜자가 되어 미국으로 건너오게 된다. 아이들이 집단으로 생활하는 곳에서 늘 짜여진 계획표 대로 쳇바퀴 돌듯 생활해 왔던 예진이에게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을지는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저 수가 적고 모범적이었던 자신의 보육원에서의 태도가 미국으로 가는 혜택을 누리게 이유였을 것이라고 예진이는 회상한다.


“보육원에서 생활할 때 미국의 YANA Ministry가 해마다 보육원으로 BBS를 하기 위해 왔었어요. 그저 보육원이 하는 프로그램이니까 그냥 BBS에 열심히 참여했고 보육원에서의 모든 행사와 마찬가지로 그냥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받아들였지 특별한 생각은 없었어요. 처음 보육원으로부터 미국의 위탁가정 프로그램에 제가 선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냥 좋았죠. 미국 가면 성공하겠지? 왜냐면 그 당시만 해도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해가 너무 부족했었으니까요.”


보육원의 둥지를 한 번도 벗어나 보지 않았던 아이가 나라 미국까지 건너와 가정에 가족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모르긴 해도 적잖은 혼란과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 제가 12살이 되던 2014년에 처음으로 미국에 왔어요.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든 느낌은 장시간 비행 탓인지 좀 피곤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구요, 좀 지나고 돌이켜보니, 사실 한국에서는 미국을 상상할 때 TV나 영화를 통해 보던 미국이, 미국이라는 나라의 실체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제가 마주한 현실은 전혀 달랐죠. 새로운 가족과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으니까요. 사실 저는 엄마, 아빠 혹은 부모라는 개념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는 상태였고 가족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롭게 형성된 가족 구성원들과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관계를 맺어가는 게 무척 어려웠어요. 한 예로 엄마가 사주시는 옷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입지도 않으면서 맘에 든다고 고맙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후원자들에게 거절을 잘하지 못했고, 그분들께 저의 단점을 보여드리는 일에 익숙치 않았어요. 마찬가지로 위탁가정에서 엄마가 되어주신 분께 저의 단점을 노출하기가 싫어서 단 한 번도 ‘싫다’라는 의사를 표현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러면 엄마가 저를 싫어하실까 봐, 가족들이 저를 멀리할까 봐 늘 두려웠죠. 미국 생활이 시작되고 얼마쯤 지난 후부터 그런 문제에 부딪히게 되자 가족이 한자리에 앉아 어떻게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 함께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어요. 12살짜리 고아로 자란 제게는 가족이라는 말이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단어였어요. 왜냐면 제가 태어나 처음 경험한 가정은 깨어지고 일그러진 채로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데, 그렇게 각인된 생각을 바꾸는 것이 무척 힘들었던 거죠. 그런데 지난 6년 간 가족들로부터 끝없는 사랑을 받으면서 저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생각도 달라지게 되었어요.”

낯선 환경이 주는 두려움, 적응해 가는 시간, 서로를 이해하고 존재를 받아들이는 시간이 쌓여가면서 예진이는 점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소중함을 알아가게 되었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이런 것들이에요. 식탁에서 같이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저는 사실 가정 안에서의 제 역할이 어떤 것인지를 잘 몰랐었거든요. 한국에서는 밥을 받아서 시간 안에 다 끝내고 학교에 가고 모든 게 프로그램에 따라 진행되기 때문에 식탁에서 그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자체를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 시간을 통해 가족이 이런 것이구나 알게 되었죠. 너무 좋았어요. 가장 소중한 것은 가족이 뭔지를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동생이 되어준 David는 너무나 착하고 고마운 동생이죠. 제가 이곳에 오기 1년 전부터 저를 위해 기도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몰라요. 제 영어가 서툴러서 아빠께 영어 에세이 쓰는 것을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는데 단번에 안된다고 하셨어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실패해도 괜찮고 다시 클래스를 듣게 되더라도 괜찮으니까 스스로 하라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때 만일 아빠가 저의 에세이를 도와주셨다면 지금의 저는 무척 의존적인 사람이 되어있었을 거예요. 그 일을 계기로 지금은 저 스스로가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엄마는 한마디로 ‘너무 멋진 사람’이시죠. 너무 쿨하시고 저에 대해 너무 많이 아시고 그걸 이해해주시고 고쳐주시고 바꿔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처음 미국으로 건너올 때는 야나 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고 한다. 그저 삶의 터전이 바뀌는 것, 뭔가 나은 환경으로 옮겨간다는 기대 이외에는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단다. 그러나 막상 미국에 와서 매일매일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경험하면서 야나 프로그램이 얼마나 좋은 프로그램인지, 자신이 얼마나 행운을 누렸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해야 할까요? 처음 미국으로 건너올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랐던 것 같아요. 미국에 와 생활하면서 또 학교생활과 교회에서의 야나 활동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엄청난 특권을 누리고 있는가 자주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어려서부터 그런 사회 기관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일에 무척 익숙해져 있었어요. 특히 저는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후원자들도 많았거든요. 그냥 나는 사회적인 약자니까 다 받아도 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 같아요. 도움을 주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좀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요. 그런데 야나 프로그램의 핵심 가치, 야나가 뭐 하는 곳인지를 배우고 알게 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고 누렸는지, 그게 그저 내 몫이 아니라 언젠가는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주어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Eastern Christian High School 졸업식 날 친구들과 함께

Yana Ministry의 위탁가정 정책은 아이가 고등학교 과정을 마칠 때까지 보호자가 되어주는 프로그램이다. 대학에 진학하면 성인이 되기 때문에 보호자의 역할을 어느 정도 끝난다고 있다. 위탁가정에서의 6년 과정을 마친 예진이는 지난 9월 대학에 진학했다. 다니던 사립고등학교(Yana Ministry를 통해 한국에서 미국으로 오는 아이는 유학생의 신분을 갖게 되기 때문에 공립학교 진학이 어렵다. 사립학교에 다니는 동안의 학비는 YANA Ministry가 전적으로 지원한다)를 차석으로 졸업한 예진이는 현재 오하이오(Ohio)에 있는 케이스 웨스턴 대학(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CWRU))에서 공부하고 있다.


“제가 다니는 학교는 Cleveland Ohio에 있는 케이스 웨스턴이라는 학교에요. 지리적으로도 너무나 좋은 곳이고 제가 공부하고 싶은 의료 서비스 분야의 좋은 프로그램과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 줄 학교라서 선택하게 되었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는 공부에 집중하느라 다양한 활동을 하지 못했는데 대학에 가서는 다양한 클럽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계획이에요. 케이스 웨스턴은 헬스 캐어 엔지니어링(Health Care Engineering) 쪽이 강한 학교로 알고 있어요. 아직은 확실치 않지만, 아마도 메디컬 쪽으로 공부를 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암기는 잘해서 공부하기가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아요(웃음). 학교를 결정할 때 아빠가 많이 도와주셨고, 캘리포니아는 너무 멀고 이곳은 집에서 가까워서 결정하게 되었어요.”


메디컬 분야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저 공부하는 쉬워 택한 길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고 그와 연관된 진로를 향해 걷고 있는 것은 아닐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실 메디컬은 개인적으로 관심이 있는 분야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야나 미니스트리와 관련된 일을 하고자 할 때 분명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그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진 것은 분명해요. 한국 보육원에 있을 때 야나 미니스트리에서 활동하시던 분들이 메디컬 필드에 계신 분들이 많으셨거든요. 의사라는 직업이 무엇보다 누군가를 돕기에는 참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한국의 보육원 시스템은 이렇다. 어려서 고아의 신분이 되면 들어와 정부의 혜택으로 무상교육과 생활권을 보장받으며 살 게 되지만, 그 아이가 자라 만 18세가 되면 보육원을 떠나 혼자 자립해야 한다. 가족도 없고, 더욱이 대학에 진학할 만한 형편도 못 되는 18세의 아이들은 어려서는 없었던 생존을 경험해야 하고 고립무원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기가 다반사다.


“동명 보육원에서는 늘 어떤 두려움에 사로잡혀 지냈어요. 나중에 성인이 되어서 동명을 떠나게 되면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왜냐면 그렇게 대책 없이 사회로 나가는 언니·오빠들을 많이 봐왔고, 실제로 저의 오빠도 보육원을 떠나 혼자 살고 있거든요. 아주 적은 금액의 정부지원금으로 고시원을 전전하게 되는 게 뻔하거든요. 그런데 지난 6년간 아빠가 제게 늘 입버릇처럼 해주시던 말씀이 있어요. 여기는 너의 집이야, 네가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곳이지. 네가 어떤 실수를 하든, 어떤 실패를 겪게 되든 상관없이 마음 편히 돌아올 수 있는 곳 말이다. 가족이란, 집이란 그런 곳이야! 아빠의 그 말씀이 언제나 저를 지켜주는 것 같아 너무 든든해요. 보육원에서 저를 사로잡고 있던 두려움이 없다는 것, 제게도 어떤 미래가 있다는 것이 너무 기쁘죠.”

예진 양의 새 가족, 동생 David, 아빠 신순규 씨, 엄마 Grace 씨

평범하지 않은 출발, 어린 나이가 겪기에는 버거웠을 보육원에서의 생활, 그리고 ‘가정’이라는 세계를 경험하고 마침내 가족을 얻은 예진이는 자신의 달라진 앞에서 새로운 목표를 품을 있게 되어 행복하고 감사하단다.


“우선은 학생이니까 일단 열심히 공부 할 생각이구요, 앞으로 어떤 공부를 하게 되든 저는 반드시 YANA Ministry로 돌아와 내가 이곳을 통해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주고 싶어요. 제가 누렸던 것처럼 여기와 인연을 맺게 되는 아이들을 격려하고, 마음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고 그들의 멘토가 되고, 그 아이들이 지금은 결코 알 수 없는 희망을 주고 싶어요. “어떤 상황에서든 인내하고 끝까지 노력하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힘든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아빠가 늘 제게 용기를 주시면서 하시던 말씀인데요, 그 말씀 때문에 지금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해줄 수 있는 든든한 지원자, 그들이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가족이 되어주고 싶어요.”


예진 양과 1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 그녀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는 ‘가족’에 대한 기존의 의식을 재구성하도록 조용히 요구했다. 혈육이 아니면 가족이 아니라는 낡은 사고를 넘어서도록 도전을 준다. 사회에서 ‘너무 일찍 너무 늦어버렸다’고 절망할 수도 있었을 자신을 한 울타리 안으로 받아주고 자신의 잠재력을 발견하고 키워낼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며,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희망을 심어주는 곳, 그렇게 사랑을 나눠주는 곳이라면 그곳이 바로 가정이고 그들이 한 가족이 된다는 것을 그녀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던 것이다. 11월 Thanksgiving Day가 되면 그녀는 다시 가족이 있는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다. George Bernard Shaw의 말처럼 미리 천국을 맛볼 수 있는 그런 곳, 바로 그녀의 가족이 있는 이곳 말이다.


Interview, 기사 Young Choi Editor, 사진 제공 Yejin 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