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A Rainy Day. Essay by Clint Jung, Writer

-그런 기분 아니?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들어와서 쉬는데 내가 열심히 사는 거 같지 않은 느낌….
취업에 성공해서 안정감이 들지 않냐고 부러워하며 묻는 대학 후배에게 졸업 선배가 답한다. 불안하다고. 졸업하자마자 직장인이 되어 바쁘게 사는데도, 브이로그 진행, 독서 모임 참여, 외국어 학습, 자기 계발 등에 바쁜 동료들을 보니 위기감이 든다. 일단 뭐라도 시작해 보지만 더 많은 것을 해냈다고 자랑하는 지인들의 SNS를 보며 의기소침해진다. 2030 세대가 가장 즐겨본다는 웹드라마, 픽고 <Pickgo>의 ‘보여주기식 인생’ 편에서 나오는 대사와 주 내용이다.
근무하던 회사가 이전하기로 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맨해튼의 오피스 공실률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선택의 폭이 넓어 고심했다는데, 현 상주하고 있는 건물의 다른 층으로 옮기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실내 공간이 잘 배분되어 있어서 활용 가치를 더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몇 배는 커진 쇼룸과 회의실. 전망 좋은 창과 넓어진 라운지. 그러나 전보다 4분의 1은 줄어든 책상 개수. 붙박이 자리를 모두 치우고 공유 책상이 들어선다. 대세로 자리 잡은 직장문화인 하이브리드 근무로 인해 공간 낭비를 줄이기 위한 결정이었다고 한다. 결정에 대한 발언권이 없는 직장인으로서 재택근무가 이어지기에 감사할 뿐이었다. 이사 가기 전 마지막 주인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릴 예정이었지만, 모두 출근해서 각자 개인용품들을 정리하고 포장해 놓기로 했다. 사물함은 정리할 것 투성이다. 파쇄기로 직행할 것들을 먼저 추려냈다. 이면지, 거래처 옛 담당자의 명함, 기한이 한참 지난 업체 메뉴얼, 철 지난 서류…. 컴퓨터와 주변기기들이 정리되면서 물리적인 내 자리가 사라졌고, 어느덧 책상 위엔 상자 하나만 남았다. 운동화‧방석‧치약‧칫솔‧머그잔‧텀블러‧충전기‧필기구 등, 세월의 흔적들이 담긴 상자. 유품 정리사가 등장하던 <무브 투 헤븐> 드라마의 장면이 겹쳐 보였다. 그 많던 유품들을 정리하고 나니 겨우 한 상자만 남던 장면이. 지난 십여 년의 자취가 모두 담긴 개인용품 상자를 보며 나는 생이 다한 것도, 일자리를 잃은 것도 아닌데 인생무상, 일장춘몽을 눈에 떠올리고 있었다.

궂은비 때문에 더 막히던 저녁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우두커니 있다가 며칠 전 아내가 전한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스타트업 회사인 OpenAI에서 챗GPT <ChatGPT> 란 챗봇이 출시됐다고 했다. 모든 지식을 탑재한 인공지능 웹으로 구글 검색 엔진을 대체할 거라며 극찬을 받는 중이다. 코딩, 문서 및 작문 관련 직업들은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고. 테스트를 해봤던 프로그래머 직업을 가진 지인도 말했었다. 속도도 빠르지만, 결과물도 작동이 잘 된다고. 조만간 단순 업무나 기본 수준의 프로그래밍 직업군은 소멸할 수 있겠다고. 창작을 장착한 인공지능이 논문, 기사, 에세이, 소설 등을 대량생산 하는 시대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창호도 못 이기는 AI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예전 뉴스에서 한 면담자가 경력자를 구한다는 채용 광고에, 경력 쌓을 기회조차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경력자만 뽑냐고 항변하던 말에 공감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왜 인공지능만 쓰고 인간의 일자리는 창출하지 않는지에 대한 항의가 뉴스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는가’를 가지고 따지는 상황이 곧 사회 전반에 벌어질 것 같은 머지않은 미래. 내일은 언제나 불투명했지만, 얼마나 더 열심히 살아야 안정감이 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밤이 깊어진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는 도착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걱정과 한숨 속에 시간을 보다가 예전에 톰 행크스가 <폴라 익스프레스>란 CG 영화를 찍고 나서 배우들의 일자리가 사라질까 봐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에피소드가 기억났다. 영화가 개봉한 지 어언 20년이 됐는데, 실사 영화들은 더욱 넘쳐나고 여전히 톰 행크스는 현역이다. 우울한 감상은 이제 그만. 아직 미래를 고민하고, 노력하고,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는 것에 기력을 되찾기로 했다. 유난히 추위를 타기에, 날씨에 책임을 돌린다. 종일 비가 와서 그랬나 보라고. 사실, 밤새 내릴 오랜만의 단비였다. 빗소리가 정겨워져 눈을 감았다. 어서 도착했으면 좋겠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