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As Time Goes By-Essay by Clint Jung, Writer
부모님 아파트의 거실에는 오래된 피아노가 있다. 연세가 드신 후 살림살이들을 하나둘씩 정리해가고 계시지만, 피아노는 열외품목이다. 피아노는 악기가 아니라 가구로 쳐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가족처럼 여기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좁은 거실 한구석에서 오랫동안 동거해온 야마하 업라이트 피아노. 출장 온 조율사가 다음번엔 부품들을 교체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상태가 호전된다고 보장하진 않았다. 돈이 계속 들어갈 것 같아 차일피일 미루다가 직접 조율 도구를 구매해 한시적으로 수명을 연장했다. 반세기가 넘은 연식 탓인지 한 계절을 버티지 못해 음조가 내려앉는다. 일 년에 몇 번씩을 조여도, 유지 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다. 효율성이 바닥이다. 보내 줄 때가 되지 않았나 싶었다.

디지털 피아노를 구매하시라고 어머니께 권했다. 많은 이유를 들었다. 중앙난방식 아파트에선 실내 온도조절이 어려워 나무로 된 악기들은 관리가 어렵다. 소리를 줄일 수 없어 대낮의 연습도 이웃에겐 층간소음이 될 수 있다. 부피와 무게로 이사할 때 큰 짐이 된다. 요즘 디지털 건반은 센서들이 발전되어 건반의 터치가 더욱 정교해졌고, 구분이 불가한 사실적인 음원을 표현하고 있다. 롤랜드, 야마하, 커즈와일, 카와이, 노드 어떤 브랜드를 선택해도 좋다. 가성비가 뛰어난 중저가 악기들이 얼마든지 있고, 하이엔드 급을 사면 피아노와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세일즈맨으로 빙의되어 열변을 토했다. 그래도 주저하시기에,
-시대가 바뀌었어요. 오르간처럼 어쿠스틱 피아노도 디지털로 대부분 대체될 거에요. 가성비를 생각하셔야죠. 귀도 밝지 않으시잖아요.
모질게 말했다.
결국 고민해 보겠다고 답하셨다. 그리고 몇 주 후에 가까운 대형 악기점인 기타센터로 모셨다. 전에는 없었던 레슨실이 들어선 탓인지, 건반 악기는 예상보다 적게 전시되어 있었다. 층층이 쌓은 신디사이저와 미디 컨트롤러 사이에, 입문자와 중급자용을 위한 몇 대의 디지털 피아노가 보였다. 둘러보시던 어머니는 몇 종류의 키보드를 만져보시더니 실망하셨다. 업라이트를 계속 가지고 있겠다고 결정하셨다. 하이엔드급이 한대라도 전시되어 있었더라면 했지만, 이미 떠나간 기차였다. 미리 확인해 보러 오지 않았던 나의 실수였다. 피아노가 없는 거실을 상상해 본 적 없을 어머니. 마음속에 이미 결정을 내리고 오셨을 수 있다. 전자제품이라 여기시는 디지털 악기는 따뜻한 울림이 부족하다는 감성적인 결정일 수 있다. 익숙한 피아노 본체의 외관을 통해 안정과 위로를 간직하고 싶은 감정적인 결정일 수 있고, 어쩌면 추억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

어머니의 결정을 온전히 지지하지 않았다. 건반이 내려앉고, 더 이상 튠을 맞추지 못할 상태가 올 것이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피아노는 애물단지가 되겠지. 그럼에도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정이 든 만큼, 좀 더 시간이 필요하실 것이다. 누군가가 올린 인스타그램 문구가 떠올랐다. “최고의 타임머신은 노래다. The best time machine is a song”. 그리고 나는 어느새 피아노를 배우던 시절로 가 있었다. 그때의 연습곡들이 머릿속을 채웠다.
-우리가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악기가 아니라 노래에요. 다시 좋은 악기를 만날 거에요.
집에 돌아와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다가, 오랜만에 슈만의 <트로이메라이>를 들었다. 어머니가 치는 것 같았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