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북 칼럼니스트

Book Columnist Clint Jung과 함께 읽는 3월의 책, '니클의 소년들'


니클의 소년들(The Nickel Boys), 콜슨 화이트헤드 저

작년 말, 2021년 시즌을 위해 한국 프로축구 구단 포항 스틸러스에 고교 졸업 예정의 열아홉 살 센터백 수비수가 입단해 화제가 되었다. 한국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 영어, 포르투갈어 포함 4개 국어를 구사하며 키 185cm, 80kg의 좋은 체격에 높은 점프력과 제공권 장악이 특기인 이 소년은 앙골라 출신 난민 아버지를 따라 여섯 살 때부터 한국에 정착해 초중고를 모두 수료한, 난민 가정 출신으로 최초의 프로 선수가 된 풍기 사무엘이다[1].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외국인학교에 다닐 수 없어 공립학교에 줄곧 다녔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어려서부터 편견과 차별을 받아왔다. 그로 인해 철이 빠르게 들었다며 첫 월급을 받으면 은사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는 것과 축구 선수로 성공해서 태극마크를 가슴에 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2] 순박하고 좋은 인성에 굳은 의지, <니클의 소년들>을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 엘우드 커티스의 이미지로 풍기 사무엘을 떠올렸다.


글, Clint Jung Book Columnist


세상은 생각 없는 군중이라도 엘우드는 그들 사이를 뚫고 똑바로 걸어가리라. 그들이 그에게 욕을 하고 침을 뱉고 폭력을 휘둘러도 그는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피로에 지치고 피투성이가 되어도 끝까지 나아갈 것이다. – 113p


1960년대 미국 플로리다주 탤러해시에 살던 십 대 소년 엘우드가 겪는 흑인 인권 운동이 일어나던 시대를 다룬 <니클의 소년들>의 내용은 이러하다. 엘우드는 모두가 인정하는 반듯하게 자라온 아이였다. 어려서부터 부모에게 버려져 할머니 손에 컸지만, 그 동네 또래의 흑인 아이들과 다르게 전 과목 A를 받으며 대학입학 준비를 해왔다. 열세 살부터 담뱃가게에서 파트타임을 하며 집안 살림을 돕고 학비를 모았으며,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마틴 루터 킹의 연설문<자이언 힐의 마틴 루터 킹> 앨범을 들으며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려는 꿈을 키워갔다. 어느 날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고등학생 신분으로 대학에 강의를 들으러 가던 중에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량 절도범으로 오해를 받게 되고, 바로 니클 아카데미라고 불리는 소년 감화원으로 끌려가게 된다.


인종 분리 정책이었던, 흑인과 백인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시키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3]이 공공연하게 이뤄졌던 1960년대. 니클에서 졸업할 때까지 생활하게 된 엘우드는 채찍과 독방 감금, 노예 같은 노동 착취 등의 인권 유린을 경험하게 된다. 흑인 주제에 백인과 같은 말투로 말을 하고, 배운 것이 많아 니클에서 더 나은 교육을 요청하는 그를 골칫덩이로 생각하는 감화원 담당들 속에서 엘우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빠져나가려고 인내하며 버틴다. 그리고 40여 년이 훌쩍 지나 3년 전 문을 니클 아카데미는 문을 닫게 되고, 부동산 개발회사가 재개발 공사를 하던 중에 숨겨진 묘지인 부트 힐이 발견된다. 두개골에 구멍이 뚫리거나 대형 산탄이 잔뜩 박힌 갈비뼈 등이 포함된 마흔세 구의 시신이 발굴되고, 일곱 구는 신원조차 밝힐 수 없을 만큼 참혹하다. 언론들이 이 사건을 크게 주목하자, 뉴욕에 살던 엘우드는 자신과 친구들이 경험했던 그곳의 일들을 세상에 폭로하기로 결정하고 플로리다로 향한다.


어쩌면 바깥의 자유로운 세상에서는 그놈들도 착한 사람일지도 모르지. 잘 웃고, 자신들한테 잘하는 사람인지도…내가 한 번 나갔다가 돌아와 보니, 여기에서 특별히 사람들이 변하는 게 아니야. 여기든 바깥이든 다 똑같아. 다만 여기서는 아무도 가식을 떨지 않을 뿐이지. – 107p

구타, 강간, 그들 사이에서 가차 없이 벌어지는 적자생존. 그들은 견뎠다. 하지만 그들을 망가뜨린 자들을 사랑하라고? 그게 가능할까? ‘우리는 당신들의 물리력에 영혼의 힘으로 맞설 겁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해도 우리는 여전히 당신들을 사랑할 겁니다.’ 엘우드는 고개를 저었다.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 216p


2월은 흑인 역사의 달(Black History Month)이다[4]. 학교나 도서관, 여러 문화 센터에서 기념행사를 하는 것을 보게 되면 ‘아, 2월이구나’라는 생각 외엔 특별함을 가질 수 없었던, 한국에서 가정의 달 또는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기념하는 달들도 배너를 보고 떠올릴 뿐, 관계자가 아닌 바에야 굳이 무엇을 알아보거나 기념하려 들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 않던가! 그래서 콜슨 화이트 헤드의 <니클의 소년들>을 집어 든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미국 고전으로 기록될 동시대 최고작가의 퓰리처상 수상작, 그것도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의 최신작. 거기에 책 커버에 적힌 유명소설가 정유정과 천명관이 적은 전율을 느끼고 황홀한 기분을 갖게 해주는 책이라는 추천사를 읽고도 손이 가지 않으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서 작가가 흑인이며, 하버드를 졸업하고, 문학상들을 휩쓸고, 현 북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책을 펼치기 전엔 전혀 몰랐다.


세상은 계속 그를 가르치려 들었다. 사랑하지 마라, 그들이 사라질 테니. 믿지 마라, 배신당할 테니. 일어서지 마라, 얻어맞고 무릎 꿇게 될 테니. 그래도 그의 귀에는 고결한 명령이 계속 들려왔다. 사랑하면 사랑의 보답이 있을 것이다. 올바른 길을 믿으면 그 길이 너를 해방으로 이끌 것이다. -244 p


이 책을 읽으며 애통해하고 격분하면서,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여러 소설이 떠올랐다. <호밀밭의 파수꾼>, <데미안>, <노르웨이의 숲>,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그런데 그 모든 주인공이 겪은 방황, 상처와 고통이 니클의 소년들에 비하면 나이브하다고 또는 사치스럽다고 느껴졌다. 사슬에 묶이고, 쇠막대와 채찍만 기억될 때까지 매질 당하며 쇠로 된 징벌 상자에 갇혀 햇빛에 익어가는 상황과 또 개들에 쫓기며 총탄에 맞고 아무도 모르게 매장되는 상황과는 비교조차 무의미할 정도다. 백인들이 지나가면 길을 비켜주어야 했고, 백인이 이용하는 호텔이나 음식점에 들어갈 수 없었으며, 버스의 좌석이, 화장실이 인종에 따라 나누어져 있었던, 짐 크로 법을 어기면 5달러의 벌금을 내 거나 노역을 해야 했던 불과 50여 년 전에 횡행하던 그 시대 속의 피해자들과는.


3월이 되면 우리가 38년간의 일제 강점기를 회고하는 것처럼, 이삼백 년간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당했던 때를 돌이켜 보고 자신의 길을 당당히 헤쳐갔던 흑인들을 추앙하는 2월 흑인 역사의 달은, 흑인들에게도 그리고 미국에 사는 모든 유색인종과 소수민족에게도 기억돼야 마땅하다. 미국에서 인종의 평등과 자유는 오랜 기간 쌓아 온 피와 눈물의 성취다. 같은 나라에 살면서 보려 하지 않았던 아픈 과거의 역사를 마주하니, 그간 눈을 감고 있던 채로 네 이웃을 어찌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들 만큼 가슴 아프고 미안했다.


풍기 사무엘은 코로나19 때문에 3월로 연기된 한국 귀화 시험으로 인해 이번 시즌 선수 등록을 하지 못했다[5]. 그의 프로 선수 계약 조건에는 한국인 귀화가 필수 조건이었고, 귀화에 실패하면 파기되는 계약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만 포항 스틸러스는 연습생 신분으로 팀 내에서 훈련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할 계획이라고 한다. 차별 없는 경쟁에서 이겨내 언젠가 꼭 태극마크를 달고 있을 풍기를, 나의 엘우드를 기대하며 응원한다.



[1]첫 ‘난민 K리거’ 사무엘 풍기 “감독님부터 형들까지 ‘잘돼야 한다’ 어깨 두드려줘요”-국민일보 (kmib.co.kr) – 국민일보 12.27.20
[2][피치 피플] 풍기 사무엘이 꾸는 코리안 드림, 바로 태극 마크 (daum.net) – 베스트 일레븐, 12.17.20
[3]짐 크로 법 - Daum 백과 미국 남부 인종차별법의 통칭으로 백인과 흑인이 동등한 존재로서 접촉하는 것을 막기 위한 인종차별 원칙.
[4]African American History Month라고도 함.
[5]코로나19 때문에.. 간절히 바란 한국 귀화 시험 못 치른 풍기 사무엘 (daum.net) – 베스트 일레븐. 2.03.21.


<니클의 소년들> 공식 북 트레일러


콜슨 화이트헤드(Colson Whitehead )

1969년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나고 자랐으며, 하버드대학을 졸업했다. 《직관주의자(The Intuitionist)》(1999)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작품 《존 헨리의 나날들(John Henry Days)》(2001)로 퓰리처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코맥 매카시의 《더 로드》에 비견되는 《제1구역》(2011) 등 세 편의 소설과 두 편의 에세이를 집필했다. 여섯 번째 소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로 2016 전미 도서상과 2017 퓰리처 상, 앤드루 카네기 메달, 아서 클라크 상을 수상했으며, 2017년 〈타임〉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선정됐다. 2019년 발표한 《니클의 소년들》로 2020 퓰리처 상, 오웰 상, 2019 커커스 상을 받으면서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하는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자신만의 미국 고전 장르를 창조해가고 있다’는 극찬을 끌어낸 《니클의소년들》은 〈타임〉 〈퍼블리셔스 위클리〉 등 주요 매체에서 최고의 소설 TOP10에 선정되었다.


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