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 칼럼니스트 Clint Jung
Book Columnist Clint Jung과 함께 읽는 5월의 책 '노랑나비랑 나랑'

글: Book Columnist, Clint Jung
사계절이 변하는 것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 작년 한 해를 떠나보낸 후, 올해는 다를 거라 기대했으나 이미 봄이 와있음을 깨닫는다. 연초만 해도 올해 봄이 오면 딸아이와 함께 식물원도 가고 동물원도 가고 지난 해 못해본 것들을 다 해보리라 마음 먹었었는데 약속들은 흐지부지 허언으로 변한다. 마음놓고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고 웃고 떠드는 일상이 언제였었나 기억도 희미하다. 비대면이 친숙해진 생활. 지인들에게 가끔 전화를 할 때면 안전과 건강상태와 백신 접종의 유무를 확인하는 것으로 대화가 시작되고 끝난다. 어느새 잔뜩 움츠린 삶이 익숙하다.
2019년 봄, 오랜 친구 부부를 만나러 연희동엘 갔었다. 입소문으로 소개 받은 동네 카페에 들러 케익을 사고 골목 서점에 들러 주인이 정리해 놓은 추천 셀렉션을 둘러보기도 하며 하루를 보냈다. 몇 년만에 다시 방문한 서울은 또 달라져 거주지역에 고층 아파트가 채워지지 않은 곳이 없었지만, 연희동은 어느 정도 옛 주택가의 모습을 간직해서 친구의 말처럼 사람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돌아보면 볼수록 예전에 내가 자랐던 동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구불구불한 골목, 회색 담장, 늘어서 있는 전봇대, 지나치는 사람들과 주차된 차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그날따라 미세먼지도 적어 오랜만에 푸른 하늘을, 주택가 화단의 화사한 꽃들을, 봄볕의 정취를 만끽했다. 그날은 사람들만 미어터지는 유명무실한 관광지를 돌아보는 것 보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이런 풍경 속에 함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정말 봄이었다.
그런 평범한 일상이 돌변한 지 벌써 일 년이 넘은 뉴욕에도 다시 봄이 왔다. 예전같이 온전히 즐길 수는 없겠지만 철새가 돌아오고 풀벌레가 울기 시작하고 꽃이 핀다. 기다린 5월의 봄. 화가이며 작가인 백지혜의 그림책, 《노랑나비랑 나랑》을 소개하기에 어울리는 달이다.
“꽃과 나비가 사는 세상, 정갈하고 섬세한 비단 그림에 담긴 아름다운 하루”
“그림책 속으로 옮겨온 작은 전시회”– 출판사 서평중에서
사실 이 책은 내 책장에 모셔져 있지만, 딸아이의 숫자 그림책이다. 그런 것들이 있다. 아이를 위해 샀다고 했는데 정작 자신이 좋아해서 어쩔 줄 모르는 것들. 아들을 둔 키덜트[1]감성의 아빠들이 액션피겨나 스포츠 용품, 비디오 게임 등을 구입하며 나타난다. 딸을 둔 내게도 믿기 어렵겠지만 그런 것들이 간혹 발생하기도 하는데 《노랑나비랑 나랑》이 그중 하나다. 변명을 하자면 아이가 좀 더 자라서 책이 상하지 않게 관리를 잘 할 때까지 임시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가 너무 어려서 책을 읽다가 구겨 놓거나 찢어 놓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지? 보고 읽는 것 보다 보관에 신경을 쓴다는 행태가 책 본래의 가치를 절하시켜 보이긴 하지만. 그런 애지중지하는 마음으로 부둥켜 안고 있는 애장서다. 언제나 다시 쉽게 구입할 수 있다면 신경 쓸 문제가 아닐텐데 한국에서의 대다수 출판물들은 거의 중쇄를하지 않고 절판된다. 그러니 안심할 수 없다. 올해는 이 책을 넘겨주어야 할까? 슬프게도 나는 생각보다 일찍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는 생각보다 너무 빨리 자라고 있어 이 상대적 시간차의 간극을 어떻게 줄여야 할지 생각하기 벅차다. 아직 난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노랑나비랑 나랑》은 백지혜 작가의 스테디 셀러인 2007년도 작 《꽃이 핀다》처럼 유아책으로 분류되어 있으나 사견으로는 미술 섹션에 놓여져 있어야 할 작품집이라고 본다. 읽다 보면 박물관의 선물코너에서 구입하는 대가들의 작품집처럼 한 장 한 장 넘길 때 마다 지문이 남거나 종이가 접혀질까 조심스레 넘겨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꽃밭에서 팔랑거리는 나비들을 보고 숨바꼭질이라 여기며 찾아보는 아이를 내용으로 한 연작 화접도(花蝶圖)[2]로 구성되어 있는데 광물, 꽃, 식물 등에서 얻은 천연 안료로 그린 전통 채색화는 은은한 색감이 따뜻한 봄볕 같고 살랑거리는 봄바람 같다. 첫 번째 장에서부터 열 번째 장까지 숫자가 늘어감에 따라 만개해가는 꽃들. 꽃봉오리, 이파리, 화분 틈 속에 숨은 나비들. 각 장마다 각양각색의 작약, 원추리꽃, 개양귀비꽃, 하늘매발톱꽃, 분홍낮달맞이꽃들이 이어지고, 노랑나비, 왕나비, 호랑나비, 배추흰나비들이 나풀거리며 어울리는 풍경에 시각, 청각, 후각이 한껏 휘둘린다. 조선 후기 화가 신명연[3]의 꽃 그림, 남나비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남계우[4]의 나비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던 그녀의 화접도는 조선시대 초상화의 주요 특징인 배채 기법[5]을 통해 그려진 여자아이의 생생한 표정과 어우러져 한껏 만개한다.

A Windy Day 109x51.5cm Color on silk 2010 2010 <소소한 기억들>가나 아트 스페이스 개인전 출품
출처:백지혜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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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꿈, 94x72cm 비단에 채색 2007 (미추홀 도서관 소장)⠀ Sweet Dream, 94x72cm Color on silk 2007⠀ 2007 <손에 담긴 이야기>갤러리 한옥 개인전 출품
출처:백지혜 작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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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MA, Met, Whitney, New Museum, PS1 등에 전시된 그간 화려하고 진보적이며 거침없고 그로테스크한 그림들과 설치 작품들에 익숙해져 있다가 밋밋하게 보일 수 있는 전통 채색화가 자극에 피로해진 눈과 뇌를 위로한다. 화단의 꽃들과 노니는 나비들. 그들을 따라 눈길을 쫓는 한 소녀의 모습은 딸을 닮았고, 동네 소녀를 닮았고, 내 어린 시절 친구를 닮아 있다. 책이란 공간 속에 병풍처럼 펼쳐진 전시회가 힐링을 경험하게 하고 기억을 더듬게 한다. 대도시의 거리엔 화사한 제철 꽃들이 심어지는데 향기를 퍼트릴 나비가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한국과 다르게 5월이 들어서야 봄이 느껴지는 뉴욕. 꽃이라도 피어 다행이라고. 더 늦기 전에 딸과 함께 뉴욕 식물원(NY Botanical Garden)이나 웨이브 힐(Wave Hill)로 꽃구경을 가야겠다고. 가슴에도 꽃이 피는 5월의 두근거림을 진정시켜야 겠다고. 봄이 왔다.
자세히 봐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풀꽃>전문 –나태주 詩,<꽃을 보듯 너를 본다>中.
[1]아이를 뜻하는 키드(kid)와 어른을 뜻하는 어덜트(adult)의 합성어. 아이들의 취미로만 여겨지던 프라 모델과 레고 조립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 부류– 매경시사용어사전
[2]화접도(花蝶圖)- 동양화에서, 꽃과 나비를 그린 그림
[3]신명연(申命衍) <1808년(순조 9)∼?>:자는 실부(實夫)이고, 호는 애춘(靄春). 조선 후기의 화가이며, 현전하는 작품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산수화훼도첩〉, <화조도 花鳥圖〉 등이 있다 - 한국콘텐츠 진흥원
[4]남계우(南啓宇)1811∼1890. 자는 일소(逸少), 호는 일호(一濠).나비그림의 제1인자로 불리는 조선 후기의 화가로 주요 작품은 <군접도>와 <화접도대련>과 <화접묘도>. 나비 그림을 많이 그려 ‘남나비[南蝶]’라고불렸으며, 평생 동안 나비와 꽃그림만을 즐겨 그렸다- 다음백과
[5]배채- 초상화의 뒷면에 채색을 하는 기법으로써 조선시대 초상화의 중요한 특징으로서 초상화 초본과 정본에 모두 사용되었다. - 李秀美, 윤진영. (2010). 조선 후기 초상화 초본(草本)의 유형과 그 표현기법. 미술사학, (24), 323-353.https://www.dbpia.co.kr/journal/articleDetail?nodeId=NODE01524106#none
백지혜: 작가, 한국화가

우리 그림의 아름다움과 전통을 그리는 한국화가.이화여대와 동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한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전통 진채화를 공부했고 일상의 인물들과 풍경, 기억을 주제로 작업하며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었다, 2007년에 화훼도의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첫 그림책 《꽃이 핀다》를 출간하였고 2017년에 꽃과 나비 그림, 화접도를 그린 《노랑나비랑 나랑》을 출판했다. 그 밖의 작품으로 채소밭의 풍경과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 《밭의 노래》(이해인 시)가 있다.
작업계정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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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int Jung, Book Columnist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