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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nese Matisse 산유(Sanyu), 그 유연함의 아름다움

유연한 선, 담백한 여백의 미를 화풍 깊숙히 담아내며 서양과 동양의 조화를 최고치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 중국 근대미술의 대표 화가 산유가 타계한지 50년이 지났다. 스무살에 파리로 유학을 떠나 쉰 해를 그림에 몰두하다 파리에서 사망한 그는 서양미술을 공부한 동양인 화가였고, 유럽의 많은 그림 애호가들은 그가 그린 서양화를 보며 그림 속에 담긴 동양적 정서에 매료되었다. 18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표현주의 화풍을 답습하며 사물을 단순하게 표현했던 그를 사람들이 중국의 마티스(Chinese Matisse)라 불렀던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image Sotheby's

중국의 Modern Art의 선구자로 꼽히는 산유는 중국 쓰촨성 난청시에서 태어났다. 비단 공장을 하던 부유한 가정에서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그는 사자나 말 그림을 잘 그렸던 아버지와 함께 쓰촨에서 유명했던 서예가 자오자이(Zhao Xi)에게 서예 수업을 받았다. 일찌기 그의 예술적 재능을 알고 있었던 산유의 가족들은 그를 유럽으로 유학을 보내 본격적인 예술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921년 파리 the 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 입학한 그는 누드 그림을 그리며 유학생활을 시작했다.

젊은 예술가로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해나가던 그는 재능있는 예술가를 발굴해오던 미술상 앙리 피에르 로체(Henri-Pierre Roché)를 만나면서 화가로서의 입지를 차츰 굳혀가게 된다. 산유의 그림에 완전히 매료되었던 로체는 그의 그림 111점과 습작품 600점을 수집했으며, 많은 미술상들에게 그림을 홍보하며 그의 예술적 활동을 도왔고, 산유로 하여금 유화를 그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예술가를 찾아내는 것이 직업이었던 로체에게 산유의 그림은 우아함과 소박함을 동시에 담고 있으면서도 동양적 매력까지 느끼게 해주는 매력적인 작품이었던 것이다.

산유의 작품이 갖는 독창성은 인체의 구조적인 틀 보다는 서예에서 배운 붓과 잉크의 유동성을 담아 몇 가지 그림의 주제와 본질을 포착하듯 담아내는 절제의 미와 흘러내리는 듯한 선의 아름다움과 감성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그의 작품은 프랑스 화가 앙리 마티스 풍의 미니멀리즘과 모더니즘적 요소를 두루 갖추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림에 대한 탁월한 혜안을 가졌던 로체 역시 산유가 가진 예술적 감각과 동양적 정서를 그의 작품 속에서 발견해 내고 그를 후원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유는 유학 생활 내내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유학 당시만 해도 부유했던 가정이 실크 비즈니스의 침체로 인해 더 이상의 유학 자금을 지원할 수 되어 화가로 사는 동안 산유는 궁핍을 면치못했다. 그 당시 대다수의 예술가들이 그랬듯이 산유 역시 살아있는 동안에는 큰 명성을 얻지 못하다가, 죽은 후에야 많은 예술 애호가들이 선호하는 세계적인 인기 화가로 인정받게 되었다.

1940~1950년대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푸른 화분의 흰 국화’는 산유의 후기 걸작으로, 글로벌 경매회사인 크리스티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처음 연 홍콩경매에서 약 297억원에 낙찰되었다.

다섯 명의 나부 1950년 작 120 x 172cm Christie's official image

1950년대에 그려진 ‘다섯 명의 나부(Quatre Nus)’는 크리스티 경매에서 한화 460억 이상의 고가 수익을 올렸다. 특히 이 그림은 4명의 최종 수집가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을 치루다 그날 가장 값비싼 매물로 입찰된 바 있다.

유럽이라는 서양미술의 본거지에서 동양적 아름다움을 화폭에 녹여냈던 산유는 서양과 동양의 조화를 이끌어 낸 아시아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