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lint Jung, Writer
Hide & Seek. Essay by Clint Jung, Writer
성수기가 끝난 연말에는 연휴를 끼고 밀린 휴가를 쓴다. 미국 전역에 역대급으로 몰아친 폭탄 사이클론으로 여행 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연말은 집에 머물자고 결론을 냈다. 덕분에 딸아이는 매일 무료함과 싸워야 했다. TV 시청‧게임‧공작‧요리‧그림‧노래‧피아노 하다못해 코딩까지.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함께 했다. 그런데도 부족했던 모양이다. 좁은 집안에서 홈트와 체조, 숨바꼭질을 했다. 아이는 뛰어다닐수록 신났고, 나는 지쳤다. 아이에겐 놀이가 운동이었지만, 내게는 노동이었다. 옷장 안에 숨어 잠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의 나도 숨바꼭질을 즐겼다. 찾는 것보다 숨기를 선호했다. 책상이나 침대 밑, 이불 속, 문 뒷공간, 식탁 아래. 특히 벽장 안을 좋아했다. 옷과 이불이 가득 찬, 잠들기에도 아늑한 공간이었다. 숨기를 좋아하는 행태는 유년기뿐 아니라 청소년기에도 이어졌는데 장소는 내 방 자체였다. 사방을 둘러쌓은 책장은 무너지지 않을 성벽이었고, 책상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 장소마저 벗어나고 싶을 땐 멀리 위치한 동네를 찾아 한없이 걸었다. 외로움을 즐겼지만, 한편으로는 몸서리치도록 싫어했다. 그 반복되는 모순의 시간을 버티다 보니,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성인들의 술래잡기는 자가격리나 은둔의 형태로 변모하기도 한다. 방법은 간단히 전화기의 전원 끄기. 마치 두꺼비집을 내리면 문명의 혜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과 같은 효과. 간단하지만 행동하기 어려운 방법을 실행에 옮기는 이들이 주위에 여럿 생겼는데 지인들과의 모든 연락을 차단하거나 받지 않고 있다. 이런 경우엔 마치 술래로 지목된 듯이 찾아 나선다. 어떤 이유에서건 찾지 않으면 영원히 잠수할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통보도 없이 전화번호를 바꾸어 연락 두절이 된 경우는 돌아볼 필요가 없겠지만 말이다.
예전엔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의 집을 찾아가면 되었다. 문을 두드리다 보면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에게 끌려나오는 그와 대면을 통해 화해하고 풀어내기 쉬웠다. 이제는 친구들 대부분이 뿔뿔이 흩어져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지 않다. 더 이상 마실 가듯 찾아갈 수 없다. 음성 메시지함 이용도 서먹해져 안부 문자를 몇 번 보내다 말곤 한다. 인연이란 한낱 모래위의 성이었던 걸까. 이해하기란 여전히 요원한 걸까. 불안하고 씁쓸하다.
관계에 치이다 보면 새로운 인연을 만드는 것에 힘들어한다. 쏟아부을 정신적인 여력, 마음의 여유, 제일 중요한 열정이 쉬이 타오르지 않는다. 타인의 접근을 불허하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잔액도 확인하지 않은 채 ATM에서 꺼내쓰던 사회초년생 시절의 감정 지출은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 어떤 인연이 되어 누구를 만나더라도 마음이 여유로웠던 호시절이 아니기에. 차라리, 뜸해진 관계 복원에 힘쓰는 것이 쉬어 보인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시야에 들어와 차지한다면. 그만큼 그가 노력하고 기다려주었다는 것이기에 감사하게 여기리라.

지인이 신년의 포부를 물어왔다. 으레 말하던 배움과 성취를 떠올렸다가 털어냈다. 무엇보다도, 관계가 소원해진 친구들을 다시 찾아보겠다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감정이 완전 연소 되기 전에 서둘러야지. 어떤 때는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주던 관계가 그립다고. 고적한 네게 안부를 물어야지. 이젠 술래를 바꿀 차례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신년엔 좀 더 성장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쪽에 놓인 창에 노을이 가득 찰 때면 의자를 조금씩 움직여가며 어스름한 석양빛을 마흔 네 번이나 보았다는 어린 왕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노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 심정을 마흔 네 번이나 흔들 때엔 참담하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닐까. 세월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인연이 많지 않았으니. 오히려 행복했을까. 찬바람이 창문을 흔들어 놓는다. 어느새 한 해가 또 곁을 스쳐 간다.
Clint Jung, Writer

Stonybrook University 졸업
뉴욕에서 십여 년째 라이센스 제품 제조·판매업체에서 근무 중. <겨울>, <계절 음악>, <나, 그 정체>, <아동심리>, <One Day> 시집을 출간했고, 시와 책 관련 에세이를 기약 없이 집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