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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박정아, 그 선율의 온도

요즘 한국의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다양한 국제 무대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일이 잦아졌다. 옥석난변(玉石難辨)이라는 말이 딱 제격일 정도로 모두가 옥의 경지에 이른 예술인들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다채로운 연주를 맛볼 수 있는 호시절을 만난 셈이지만, 연주자들은 자신의 연주를 각인시키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우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피아니스트 박정아(Esther Park)씨에게 물었다. 자신의 연주를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필자의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대답한다. “화끈한 연주!” ‘화끈하다’는 말의 물리적인 온도는 얼마쯤 될까? 그녀의 연주, 그 선율의 온도를 가늠해보고 싶어졌다.


박정아와 피아노 그리고 삶의 시작


모든 원칙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라더니 그녀가 그랬다. 한 분야에 천재적인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은 대체로 다른 분야에는 조금 어눌하기 마련인데 박정아씨가 바로 그 예외였다. 피아노는 차치하고 작은 체구 그러나 당당한 걸음걸이, 유연한 매너, 게다가 논리적이고 야무진 언변,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다. 연주 일정에 쫓기던 그녀를 잠시나마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오전 9시. 이렇게 이른 인터뷰는 필자로서도 처음이다. 커피 한 잔을 받아 든 그녀가 환하게 웃는다. 일순간 BTS의 Dimple한 소절이 머리를 툭 치고 달아난다. 양쪽볼에 깊게 패인 보조개, 정말 ‘천사가 남긴 실수인걸까?’ 서른을 넘긴 그녀의 얼굴 위로 작고 여린 소녀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녀는 부산에서 출생했다. 성악을 전공하고 오페라 단원으로 활동하셨던 어머니의 예술적 유전자를 이어받은 태생적 뮤지션이다. 이후, 어머니께서 음악학원을 경영하셨던 까닭에 음악적 무드에 젖은 채로 성장했고 음악이 좋다싫다 따져볼 틈도 없이 음악이 이끄는 대로 살아온 운명적 뮤지션이다.


"피아노와의 조우? 태어나면서 두통을 앓았던 사람은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두통을 앓는다고 믿게 되듯 나 역시 그랬다. 태어나기 전부터 엄마의 노래를 들었고 태어나서는 피아노 아래를 기어다녔고 피아노 위에서 잠을 자며 자랐다. 그런 내게 피아노는 당위였고, 아무 조건이 없는 필연이었고 나의 전부였으며, 피아노가 없는 세상을 나는 처음부터 알지 못했다."


5살 때 부터 여러 신문사의 각종 콩쿨을 휩쓸며 신동 소리 들었던 그녀는 부산에서 서울로 레슨을 다니며 실력을 쌓던 중, 우연히 알게 된 이태리 피아니스트에 의해 외국유학을 권유받는다. 또 그 즈음 만났던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서혜경씨의 조언도 크게 한 몫해 10살 어린나이에 혼자 미국으로 건너왔다. 1년간 부모님의 지인의 집에 머물며 줄리아드 프리스쿨을 다니고, 2년 후 가족들이 이민을 와 본격적인 미국생활과 함께 음악에 대한 전문교육에 집중하게 된다.


"지금 내 나이가 혼자 머리도 감지 못하던 10살 짜리 어린딸을 멀리 미국까지 보내야 했던 당시 엄마 나이와 비슷하다. 엄마도 나도 뭘 몰랐다. 그 때를 돌이켜보면 인생에는 때로 어떤 무모함이 오히려 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재고, 가늠하고 그래서 그게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를 다 알았다면, 즉, 무모할 줄 몰랐다면 확언컨데 현재의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거다."

말 끝에 그녀의 눈가가 설핏 젖어든다. 나는 못본 척 그 눈물을 훔쳐봤다. 아마도 무수한 감정들이 응집된, 33년의 삶이 담긴 눈물인지도 모르겠다. 어린딸을 보내고 한순간도 염려를 놓지 못했을 어머니의 애끊는 마음, 딸을 위해 천일기도를 올렸던 아버지의 간절함이, 또 말도 통하지 않던 이국에서 부모도 없이 혼자 살아내야 했던 ‘어린 정아’에 대한 스스로의 연민까지도 녹아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자신의 인생에서 피아노의 대체물을 찾지 못했고 남은 인생도 그럴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때는 의사가 되고 싶었고 여전히 여지가 남아있는 바램이지만 그렇다고 피아노를 포기할 만큼의 간절함은 아니란다. 그렇게 10살에 줄리어드 프리스쿨에 들어가 21살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기 까지 그녀는 줄리아드와 함께 성장했고 마침내 화끈한 피아니스트가 되었다.

컴페티션 박(Competition Park)


십대시절 그녀의 별명이다. 좋은 성적을 얻었던 굵직한 콩쿨 몇 개를 소개해달란 말에 그녀가 잠시 망설인다. 너무 많아 헤아려보기도 벅찬 모양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컴페티션 박’이었을까! 그녀의 십대시절은 콩쿨과 컴페티션으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미국에는 각 주, 도시 등 지방마다 콩쿨이 많아서 콩쿨에 입상하고 받은 상금으로 학비가 채워질 정도였다. 뉴저지 심포니 영아티스트 콩쿨에서 일등했고, 사우스 캐롤라이나, 뉴올리앤즈, 상하이 국제 피아노 콩쿨, 러시아 카다로브스키 국제콩쿨, 쇼팽콩쿨, 번 클라이번 콩쿨 등 다 나열하기가 힘들만큼 많다. 콩쿨에 가면 다른 콩쿨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친구들이 나를 컴페티션 박이라고 불렀다. 어느 대학 교수님은 어렸을 때 콩쿨에 참가했던 나를 기억하고 인사를 건네주신 적도 있다. 콩쿨 참여가 잦으면 한 곡을 집중해서 연습해야 하기 때문에 레퍼토리를 다양하게 늘리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러나 자신의 실력을 인정받고 연주자로써 존재를 알리는 기회가 되는 장점도 있다."


미국 음악과 유럽 음악, 그 열정과 냉정 사이


줄리아드 석사과정을 마치고 서양음악의 본토인 유럽으로 건너간 그녀는 독일 하노버 국립대학(Hochschule fü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 최고연주자 과정(Soloklasse)을 거치면서 3년간 유럽음악과 미국음악의 차이를 공부하고 음악적 이해의 폭과 깊이를 연구했다. 이후, 다시 예일대학(Yale University)으로 건너와 박사학위를 받고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East Tennessee State University)교수로 4년 째 재직 중이다. 박정아씨의 삶의 궤적을 이렇게 몇 줄 몇 문장으로 가둬놓고 보니 그간 그녀가 걸었을 굴곡진 여정들이나 학업을 위한 치열한 분투를 좀 더 조명하지 못한 것이 내심 아쉽다. 물론 나로써도 그게 얼마나 어렵고 고독한 일이었을지 상상조차 하기 어렵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내 눈앞에 정연하게 준비가 되어있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성격인 반면, 엄마는 좀 다르다. 처음 엄마와 함께 유럽에 갔을 때, 몇 십년 전 한국에서나 해보셨을 법한 수동식 차를 빌려 이태리부터 북유럽까지 운전하고 가셨다. 엄마의 긍정적인 마인드, 뭐든 일단 하고보는 추진력은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 온 큰 에너지였다. 유럽은 서양음악의 본토이기 때문에 독일에서의 공부는 그 자체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었다. 그간 미국에서 배운 음악은 스케일이 크고 다양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적 요구가 있는 반면, 유럽교육은 음악의 본질과 디테일에 집중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학구적인 무드보다는 실기를 강조하는 분위기였고 덕분에 3년간 연주에 깊이 집중할 수 있었다. 음악적 차이를 단적으로 표현하면 유럽음악은 섬세하면서도 깊은 철학을 담고 있는 반면 미국적 시각에서는 지루하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고, 미국음악은 파워가 있고 스케일이 커서 열정적인 반면 유럽의 견지에서는 허세나 과장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콘서트홀을 비교해봐도 알만하다. 카네기 홀은 규모가 대단하다. 그러나 옛날 유럽 음악은 살롱음악이나, 하우스 콘서트 같이 소규모 연주가 주를 이뤘다. 모든 예술이 그렇지만 그 나라의 민족성이나 문화, 환경 등 다양한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형성되듯이 두 대륙간의 음악적 차이는 당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공부했던 나로써는 유럽의 음악적 무드를 배울 수 있어서 필요한 경험이었고, 또 다행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천 개의 곡을 위해 천의 얼굴을 갖되 나는 나, 박정아여야 한다


필자가 물었다. 베토벤을 연주할 때 연주자는 누구여야 하는지를. 연주자는 베토벤을 가장 베토벤답게 표현해야 하며 가장 베토벤 다운 연주라는 것은 음악이 작곡될 당시의 베토벤의 의도와 생각과 감정을 가장 완벽하게 재현해야 하는 것임을 전제한다면, 그 곡을 연주하는 나는 창작의 그늘 아래에서 결국 베토벤을 넘어서지는 못하는 단순한 테크니션이 되는 것 아니냐며 다소 도전적으로 물었다.


"길게 설명할 수 없지만, 당대의 곡을 그 시대처럼 잘 재현하는 것이 중요한가, 그럼에도 연주자의 개성이 드러나야 옳은가에 대한 논쟁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오랜 화두다. 음악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재현의 측면과 창의적 연주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를 반복해왔다. 나는 이 문제에 비교적 단순한 견해를 갖고있다. 베토벤을 가장 베토벤 답게 연주하되 거기 박정아가 있어야 한다. 말은 간단하지만 사실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안다. 그러나 결국 이러한 예술적 공존을 완성해내는 것이 연주자의 사명이자 숙제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 문제를 조금 더 확대해보면 단순히 연주자만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되는 측면이 있다. 이런 문제를 한번쯤 고민해 본 관객이라면 관객으로써의 결단도 필요하다. 쉽게 말하면 베토벤을 듣고 싶으면 베토벤이 가장 잘 표현된 레코딩을 들으면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름이 걸린 연주회에 간다고 할 때는 베토벤과 더불어 그 연주자의 색채나 개성까지도 함께 즐길 줄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곡마다 서로 다른 해석이 있다는 것, 그것이 수많은 연주자가 있는 이유이고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피아노 학도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가 아닐까? 그런 측면에서 이 문제는 연주자와 관객이 함께 고민해봐도 좋을 주제라고 생각한다."


열정이 폭발하면 인간의 한계는 무의미하다


어떤 질문을 던져도 5초 이상 생각의 말미를 갖지 않는 박정아씨,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험적 깨우침이나 통찰이 묻어나는 대답들이 인터뷰 중에 잔잔한 울림을 던져준다. 내가 훌륭한 예술가의 조건을 묻자 그녀는 ‘열정과 의지, 그리고 지속적인 후원’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재능’을 요건으로 꼽지않는 그녀의 대답이 조금 흥미로웠다.


"반론의 여지는 있겠지만 나는 열정이 곧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마음을 쏟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열정을 펼칠 권리가 있기에 비록 타고난 재능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해도 그 일이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한 그 길을 가라고 나는 말할 것이다. 세상에 ‘조성진’ 같은 피아니스트가 1000명이 필요한 건 아니다. 다들 나름의 재능만큼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도 뛰어난 재능은 없지만 음악을 향한 열정이 누구보다 큰 학생이 있다. 그런 학생을 가르치고 그 학생이 사회로 돌아가 자신의 역량만큼의 음악적 발현을 이뤄낼 때, 열정의 진정한 가치를 깨닫게 된다. 훌륭한 예술가가 되고 싶은 사람의 열정은 정말 파워풀해서 열정이 재능의 한계를, 나아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할 때가 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런 열정 플러스 (Plus)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의지, 그리고 지속적인 스포트(Support), 이 세가지의 발란스가 유지될 때 훌륭한 예술가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박정아, 아놀드 쉔베르크(Arnold Shoenberg) 스페셜리스트가 되어야 하는 이유


피아니스트들에게는 저마다의 고유한 색깔이 있고, 그 색채가 특정 쟝르나 작곡가와 가장 잘 매치가 될 때 사람들은 그를 스페셜리스트라고 부른다. 특정 작곡가의 전통적 맥락을 가장 잘 살리되 아울러 자신만의 독창성을 드러내야 하기 때문에 스페셜리스트가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어려운 만큼 영예로운 것임에 틀림없다. 박정아씨는 자신이 몰두하고 싶은 작곡자로 아놀드 쉔베르크를 꼽았다. 쉔베르크의 무조주의나 12음 기법과 같은 파격적인 혁신은 결국 현대음악을 태동시키는 모체가 되었지만 그러나 여전히 낯설고 난해한 음악으로 인식되고 있어서 그녀의 대답이 좀 의외였다. 물론 깊이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생각이라는 단서를 달면서도 그녀는 과감히 쉔베르크를 선택했다. 평범, 그것은 박정아가 아니기 때문이다.


"쉔베르크를 연구하고 싶은 이유는 지금까지 충분한 연구가 되어있지 않은 전인미답의 길이라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고, 또한 현대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생각을 바꿔놓고 싶은 도전적 욕심이 있어서 그렇다. 현대음악에 대해 뭔가 불편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 귀가 이미 클래식에 잘 길들여진 탓이 크겠지만, 현대음악 초연 당시 그 음악이 제대로 잘 전달되지 못한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충분히 공부가 되고 검토가 된 다음 제대로 전달이 되었어야 하는데, 숙성되지 못한 음악이 급하게 전달된 느낌이 있다. 게다가 검증이 어렵기 때문에 어떤 연주가 훌륭한 연주인지 가리기가 쉽지않다. 현대음악으로의 대중적 접근을 제대로 유도해보고 싶고 그 중에서도 쉔베르크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 요즘 젊은 연주자들 사이에서는 초현대음악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아직까지 쉔베르크 스페셜리스트는 없는 것으로 안다."


깊고 입체적인, 그래서 심장에 꽂히는 화끈한 연주


가장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를 꼽으라는 질문을 던져놓고 나는 내심 러시아 피아니스트 그레고리 소콜로프(Grigory-Sokolov)를 예감하고 있었다. 소콜로프의 연주를 논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묘사가 바로 ‘파워’인데 박정아씨의 피아노도 힘있고 명징한 소리가 단연 매력이기 때문이다.

"쇼콜로프의 입체감을 배우고 싶다. 고도의 집중에서 나오는 파워풀한 소리 그러면서도 쇼팽을 다룰 때의 어루만지듯 속삭이는 그의 극단적인 변신이 좋다. 연주자의 철학이 녹아있는 섬세하고 깊이 있는 연주, 컬러풀한 표현들, 핵심을 지키면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것,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예일대학교 연주 일정으로 잠시 커네티컷을 다녀가는 박정아씨는 다음 주말에는 테네시 주립대학에서 독주회를 갖는다. 이번 독주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데 그녀가 이스트 테네시 주립대학(East Tennessee University) 교수로 터를 잡은 지 4년을 기념하는 독주회이기 때문이다. 그 의미가 단순히 수리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처음 학교에 부임했을 때 갓 입학했던 학생들이 이제 시니어(Senior)가 되어 세상으로 나가는 시점이라 그들을 보면서 마치 그녀 자신이 시니어가 된 마음으로 어렸을 때 연주했던 곡들을 모아 퍼포먼스를 하며 졸업생들을 축하, 격려하는 뜻깊은 연주회다. 그래서 레파토리에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의 어린이 정경(Kinderszenen)을 포함했다. 20대의 슈만이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며 작곡한 어린이 정경을 통해 그녀도 자신의 지난날을 순수하고 청초한 슈만의 음악으로 채우고 싶은 모양이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인정받는 연주자는 점점 늘고 있지만 길게 빛을 발하는 연주자는 많지 않다. 연주회는 많은데 연주가 끝난 뒤 긴 여운으로 우리를 붙드는 음악은 드물다. 아마도 피아니스트 박정아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아야 할 것 같다. 그녀의 연주에는 젊지만 격조있는 음악적 해석과 그것을 응집된 에너지로 표출해내는 그야말로 ‘화끈함’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느 장소에서 연주를 하든, 그때 그 곳에서의 음악을 기억해주는 단 한명의 청중을 생각하며 매순간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 박정아씨. 그녀의 선율의 온도는 관객의 심장을 녹이고도 남을 만큼 강하고 뜨겁다.


인터뷰, 글: Young Choi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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