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 TOUCH storylab

카페 덕후들의 커피가 있는 오후, Pete’s Tavern O. Henry Made Famous!

여름 내 무성하던 나무잎이 형형색색 무늬를 그리다 떨어지고 ‘마지막 잎새’ 하나를 남겼다. 이 뜬금없는 고전적 표현이 진부해도 너~무 진부하지만 이렇게 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재확산으로 인해 뉴욕을 비롯한 Tri-States가 다시 방역 규정을 강화한다는 뉴스를 발표했지만 철지난 노천 카페에 삼삼오오 무리 지어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미디어의 주의에도 요동이 없다. 찬기운 감도는 늦은 오후, 카페 덕후들은 Village McDougal Street을 출발해 느릿느릿 블락과 블락을 이어 걸으며 마침내 Pete’s Tavern에 다다랐다. 150년도 훌쩍 넘은 오랜 카페 구석자리에 앉아 살짝 금이 간 사기 잔에 철철 넘치게 채워줄 뜨거운 커피 한모금을 기대하며 말이다.

Pete’s Tavern은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선술집이자 카페다. 1829년 포트만(Portman) 이라는 이름의 호텔로 처음 지어졌던 이 건물은 몇차례 증개축을 거치다 1899년 아일랜드 출신 형제인 톰과 좀 힐리에게 넘어가 Healry’s Cafe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다 이후 지금의 Pete’s Tavern이 되었다. 또한 이곳은 뉴욕 최초의 공식적인 주류 판매 승인을 얻었던 곳으로 당시 시대를 아우르던 수많은 정치인들, 문학가들의 사교장으로도 자주 애용되던 곳이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1920-1930년 당시 뉴욕에 금주법이 시행되던 시기에도 이곳은 꽃집으로 위장해 술을 팔았던 곳으로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옛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Pete’s Tavern 에 도착했을 때 입구에는 Temporarily closed 라는 푯말이 걸려있었다. 전화로 문의를 해보니 이곳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되던 지난 3월에 폐쇄되었고, 곧 재오픈을 위해 준비 중이라고 한다. 비통(?)한 마음으로 길건너 커피샵에서 커피 한 잔을 사들고 우리는 다시 Pete’s Tavern 앞으로 돌아왔다. 비록 내부 방문은 불가하지만 이대로 돌아서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커 걸음이 떼어지지가 않았다. 평소 16개의 아웃도어 테이블이 줄지어 놓인다던 카페 벽면을 따라 감색, 검정색 대비가 선명한 거대한 벽화가 눈에 들어온다. 그림 위에는 ‘Pete’s Tavern O. Henry made famous’라는 문장이 희고 굵게 볼드처리 되어있다.

자, 이제 글머리에 뜬금없이 진부하게 표현된 ‘마지막 잎새’이야기를 하는 게 좋겠다. 이곳 Pete’s Tavern은 ‘마지막 잎새(원제:The Last Leaf)’, ‘크리스마스 선물(원제: A Gift from Maggie)’ 등 단편소설의 대가로 알려진 오. 헨리(O. Henry)가 저녁마다 술을 마신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마지막 잎새나 크리스마스 선물 등은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소설로 알려져 있는데, 오. 헨리는 늦은밤 글을 쓰기 위해 이 카페를 자주 찾았다고 전해진다. 어린 시절 오. 헨리의 소설을 읽고 눈물을 훔쳐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실이 놀랍고 이곳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덕후들은 그랬다. 이 허름한 카페에서 단 세시간만에 완성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가난을 피할 수 없었던 당시 연인들의 마음에 큰 위로와 감동을 줬다는 사실 때문에 오. 헨리라는 작가가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 책 한 권으로 인해 이곳이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는 것이 벽화 위에 적힌 문구가 조용히 입증하고 있다.

더러는 그것이 검증되지 않은 헛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술을 좋아하고 그 탓에 47세의 젊은 나이에 간경화로 유명을 달리했던 오. 헨리가 바로 한걸음에 위치한 선술집 출입을 마다했을리 없다. 특히 이 Pete’s Tavern의 입구쪽 한 부스(Booth)는 오. 헨리가 늘 앉아 술을 마셨다던 그의 고정석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고, 업주측에서는 그가 이 자리에 앉아 고전 ‘크리스마스 선물’을 완성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오. 헨리가 이 지역에 거주했던 1903-1907년에 완성된 그의 소설 ‘잃어버린 술(The Lost Blend)’에는 Healry’s Cafe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오. 헨리는 이를 ‘Kenealy’s’라는 이름으로 표기하고 당시 카페 분위기를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그게 사실이든 그저 떠도는 소문이든 그런 소소한 시비는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인적 없는 벽화 앞에서 커피를 아껴마시며 오래도록 서성였다.

기록에 의하면 Pete’s Tavern은 단지 오.헨리만의 장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작가로는 윌리엄 시드니 포터(William Sydney Porter)가 자주 드나들었으며, 1930년대에는 아름다운 그림동화 ‘매들린(Madeline)’의 작가로 유명한 루드비히 베멀만스(Ludwig Bemelmans)가 최초의 매들린 책을 그곳에서 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파리가 배경인 매들린의 이야기가 뉴욕의 한 낡은 카페에서 쓰여졌다는 사실은 시공을 초월하는 작가적 상상력과 역량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해준다. 그의 책에서도 느껴지는 순수하고 인간적인 면모 때문인지 그가 Pete’s Tavern의 첫 메뉴를 직접 손글씨로 써줬다는 대목에서는 다정하고 소박한 인간미 마저 느껴졌다.

Pete’s Tavern은 여러 편의 TV프로그램이나 영화가 촬영 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1962년에 상영된Two for the Seesaw를 비롯해 Seinfeld, Ragtime, Endless Love, Law & Order, Nurse Jackie, Spin City, Sex and the City, 그리고 The Blacklist가 있다. 뉴욕 여성들의 삶과 사랑이야기를 제대로 맛볼 수 있게 해 준 Sex and the City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냉소적인 변호사 미란다와 인간미 넘치는 바텐더 스티브가 이곳 Pete’s Tavern 노천 테이블에서 앉아 지나가던 노부부를 보며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대화를 이어가던 중, 미란다가 느닷없이 스티브에게 청혼을 하는 대목이다. 그렇게 둘이는 노천 테이블에서 반지 하나 없이 약혼식을 하게 되는데, Pete’s Tavern의 운치있는 배경이 그 순간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150년 세월 만큼 얘깃 거리가 많은 Pete’s Tavern에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기대했던 덕후들은 적잖이 실망스럽게 발길을 돌려야 했지만, 머잖아 재오픈을 준비 중이라니 가능하다면 첫 눈 내리는 날 다시 오기로 뜻을 맞췄다. Gramercy Park 뒤편으로 늦가을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