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ng Choi Editor
Sun J Lee 씨가 사는 삶, LOHAS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생활방식이 존재한다. 불필요한 것을 끊고, 버리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삶을 지향하는 일본의 단샤리(断捨離),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편안한 삶을 꿈꾸는 덴마크의 휘게(Hygge),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향하며 느리고 여유 있게 살아가는 미국의 킨포크(Kinfolk Lifestyle) 등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락함을 통해 웰빙을 추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행복 가치를 좇는다는 기조에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지지에 힘입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라이프스타일 욜로(YOLO)도 한 시대를 뜨겁게 달구었던 삶의 방식 중 하나다. 일회적이고 불확실한 인생의 속성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때그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즐기고 누리며 살고자 애쓰는 삶의 방식에 많은 젊은이가 매료되었지만,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려는 방법으로 소비 지향적인 단면을 보였다는 시각에서 부정적 견해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미 10여 년 전에 세간에 소개되었지만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던 삶의 방식이 하나 있다. 일명 LOHAS라고 불리는 이 유형은 Lifestyle of Health and Sustainability를 지향하는 삶의 방식으로 개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웰빙을 지향하면서도 자연과 환경을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소비에 가치를 두고 사는 방식을 의미한다. 기본적으로는 육체적, 정신적인 건강과 행복을 추구함과 동시에 환경과 자원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사회정의와 공동의 행복을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개인 중심의 웰빙을 쫓던 시대를 지나 타인의 행복을 함께 도모하며 나아가 후세에 물려줄 자연과 소비 기반까지 생각하는 미래지향적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6월 터치가 만난 사람, Sun J, Lee 씨는 LOHAS라는 말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그러한 삶의 방식을 스스로 채택해 살아온 지혜로운 사람이다.
Lifestyle

Sun J, Lee 씨는 올해 74세가 된 여성이다. 30대 후반에 미국으로 이민 와 40년 넘게 이민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평범한 이민자다. 누구나 처음엔 다 그렇듯이 그녀 역시 이민 초기에는 적잖은 정신적 혼란과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고, 또 누구나 그렇듯이 그 모든 과정을 잘 헤쳐나와 지금의 안정된 삶을 일구게 되었다. 이민 당시 다섯 살, 여섯 살이었던 아들, 딸은 이제 장성하여 각자의 삶을 꾸려 먼 곳으로 터를 옮겼고, 35년 넘게 살아온 집에는 부부만 오롯이 남았다. 이들이 뉴욕 근교에 있는 이곳으로 집을 장만하여 들어 온 것이 35년 전이고 보면, 당시 한국 사람이 전혀 없던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한 그들로서는 적잖은 모험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왕복 2시간이 훌쩍 넘는 출퇴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이곳을 선택하고 35년이 넘도록 터를 지킨 이유를 Sun J 씨는 마당 한 켠을 지키는 소박한 텃밭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주말에 소일 삼아 시작했던 서너 평 남짓한 텃밭에는 수확량이 많지는 않지만 대신 다 헤아릴 수 없는 만큼의 다양한 농작물들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 아침마다 그들의 이름의 부르며 일과를 시작하는 그녀에겐 다 자식같이 소중한 것들이다. 텃밭 가장자리에 세워진 철제 담장 위로 인동초가 넝쿨을 이루고 있고, 마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름 채소들은 잠시 접어두더라도 각종 허브와 신선초, 당귀, 죽순이 구석구석 즐비하다. 그야말로 우후죽순으로 자라는 대나무를 수없이 잘라내 버려도 어느새 대나무 숲이 해마다 터를 넓히고 있다. 새봄이 오면 머리를 내밀고 올라오는 채소의 어린싹을 잃지 않기 위해 텃밭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동물들과의 사투도 그녀가 매일 치르는 전쟁이다. 텃밭 담장 아래로 토굴을 파고 급습하는 두더지를 막으려 무거운 돌을 나르고 성을 쌓기를 35년째. 그녀의 손과 발에는 수두룩한 상처가 마치 전리품처럼 남아 있다. 눈이 녹고 땅이 풀리면 밭을 갈고 봄이 오면 씨를 뿌리고 여름 한 철 부지런히 수확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늙은 줄기와 뿌리만 남은 밭은 겨울 휴지기를 맞는다. 그녀의 텃밭을 통해 선명하고 뚜렷한 네 계절을 한껏 즐겼으며, 그 밭과 함께 그녀는 이른 넷의 나이를 얻었다. 그래도 그녀는 행복해 보인다. 이제 막 잎 틔우는 싱그러운 여름 채소들처럼 젊기만 하다.
HEALTH
누구에게나 그렇지만 그녀에게 건강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화두다. 가능하면 탄수화물을 줄이고 신선한 야채와 소량의 단백질을 섭취하도록 식단을 꾸민다. 채식을 권하는 사회에 살지만, 나이가 들면 지나친 채식이 신장에 부담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균형 잡힌 식탁을 구성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채소들은 그녀가 손수 심고 가꾸고 수확한 것들이다. 따로 비료나 영양제를 주지 않고 키워 대개는 일반적인 채소보다 사이즈가 작거나 벌레 자국이 많고, 식감이 더러 질기기도 하지만 그야말로 무공해 유기농이다 보니 염려 없이 건강하게 먹을 수 있다. 식단뿐만 아니라, 매일 일정하게 걷기와 자전거 타기 등의 운동을 하는 것도 그녀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다. 운동과 더불어 짧은 시간이나마 매일 몸을 온전히 쉬게 하는 구별된 시간을 갖고 틈틈이 명상하는 것으로 스스로의 건강을 경영한다.
또한 여름 한 철에는 이 집을 드나드는 많은 가객에게 여름 채소 한 아름씩이 선물로 안겨진다. 그녀는 나누는 즐거움을 잘 안다. 내 수고에 대한 대가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얻어 간 사람들이 맛있게 먹고, 또 무탈하게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그저 마음이 좋을 뿐이다. 나누는 삶, 그리고 타인에 대한 어떤 기대도 요구도 없는 삶, 그것이 그녀 자신을 건강하게 하고 그녀가 속한 사회가 건강하게 유지되는 방법임을 그녀는 잘 알고 있다.


주말이나 연휴가 되면 그녀의 집으로 어김없이 사람들이 찾아든다. 그녀의 집에는 오래 묵힌 수제 술이 많아 그 맛을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발길을 끊기가 어렵다. 소나무 새순으로 담근 솔주, 칡뿌리로 담근 갈근주, 대래술, 당귀술, 더덕술, 머루술에 막걸리까지. 귀한 것만 보면 술을 담그고 싶어 하는 그녀는 아이러니하게도 술을 전혀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찾는 친구들은 언제나 환영이다. 여름이면 잘 익은 약술을 나누며 뒤뜰 소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거나 나무 의자에 몸은 누이고 해가 지도록, 혹은 쏟아지는 밤 별에 눈이 아릴 때까지 그들은 그렇게 서로 어울려 인생의 한순간을 함께 보낸다. 이렇듯 그녀가 자신의 삶을 사람들과 나눌 때 마음 한 켠이 억눌린 누군가는 자유로움을 얻을 것이고 외로운 이들은 외로움을 잊는 시간이 된다. 그녀는 그렇게 함께 더불어 건강하게 살기를 원한다. 타인이 없이는 나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아는 그녀는 지혜자이기 때문이다.
SUSTAINABILITY
그녀에게는 35년 동안 지켜온 좋은 습관들이 참 많다. 쉽게는 쓰레기 분리수거부터 크게는 덜 사고 덜 버리는 습관, 고치고 기워 쓰는 철저한 재활용, 또 필요를 다하지 않은 물건들을 남과 나누는 습관 등이 그렇다. 기사 서두에 Sun J 씨를 LOHAS라는 라이프스타일이 항간에 이름을 알리기 이전부터 그러한 삶을 산 사람이라고 소개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녀는 체질적으로 낭비를 모르는 사람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을 만큼 자산을 일구었지만, 그녀의 옷장은 소박하고 살림은 청빈하다. 이 빠진 김치 종지가 그랬고 잔이 턱없이 모자라는 다기 세트도 그렇다. 손때가 묻은 루이비통 핸드백은 오래전에 작고하신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한다. 그나마 동네 가라지 세일에서 그저 얻다시피 사 온 낡은 턴테이블에 엘비스 프레슬리의 해묵은 LP 한 장이 돌아가면 핸드 드립 커피 한 잔을 받아들고 단풍나무 아래에 앉아 그녀는 그녀만의 행복을 즐긴다. 지난 이른 네 해 긴 시간 동안에도 시들지 않고 남아 있는 아름다운 추억들을 소환하면 온종일 행복에 겨운,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뒷마당 큰 데크 아래에는 바람에 쓰러진 나무들을 적당히 톱질하여 겨우내 땔감으로 쌓아두었다. 너른 집을 히터로만 데우기에는 에너지 소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장작만큼 고마운 것도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화덕처럼 깊고 큰 벽난로에 장작을 때고 고구마며 밤이며 이것저것 구워 먹으면 겨우내 긴긴밤이 차라리 정겹다. 지난겨울 칠이 벗겨진 낡은 흔들의자에 앉아 묵은 스웨터를 풀어 모은 실로 숄 하나를 만들었더니 버팔로 추운 동네에 사는 딸아이가 휴가 때 다녀가면서 슬그머니 챙겨갔다고 한다.
걷기에는 다소 먼 거리지만 자동차 매연을 일으킬 수 없다며 그녀가 자전거를 꺼낸다. 공연한 에너지 낭비도 기껍지 않지만, 운동 삼아서라도 그녀는 매일 자전거를 탄다. 손수 기워 만든 천 가방은 플라스틱 백을 받지 않으려고 만들었으며, 그녀는 그 가방을 자전거에 걸고 마을로 간다. 수십 년 대를 이어 운영하는 동네 베이커리에서 바게트 하나를 사고, 파머스 마켓에 들러 집에서 기를 수 없는 아몬드와 피스타치오 한 줌을 산다. 플라스틱 봉지가 싫어 집을 나설 때 빈 깡통 컨테이너 몇 개를 챙겼다. 코로나19로 많이 어려워진 로컬 마켓들을 살리기 위해 가능하면 작은 가게를 이용하고, 그들을 격려하고 응원한다.

지금까지 나눈 그녀의 다양한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삶의 방식에 대해 그녀 스스로는 지극히 당연하다 말하지만, 편리함에 길들고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대 사회의 대다수 사람이 실천하기에는 다소 버거울 일이다. 그러나 한정된 자원을 생각하고 더 큰 가치를 내다볼 줄 아는 그녀의 삶의 지혜를 생각하면 소소한 작은 것일지라도 실천에 옮기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의 가진 것을 아끼는 삶의 태도, 미래의 소비를 걱정하는 앞선 세대의 사려 깊은 배려, 교육을 통해 배운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을 통해 터득한 그녀의 지혜로운 습관들은 이미 35년 전부터 시작된 LOHAS의 출발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74세의 지혜자는 조용히 말한다. 사람을 사랑하고 환경을 아끼는 삶이 결국엔 자신을 위하는 첩경이라고!
취재, 정리 Young Choi, Editor